사상은 선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원칙들이 서로 충돌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경제 문제 앞에서 이념적 고정값 없이 어떻게 일관성을 지킬 것인가. 숙의 과정 자체가 기득권에 포획될 때 무엇이 그것을 막을 것인가. 이 세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제도보전주의는 선언으로만 남는다. 이 글은 그 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다.
가장 오래 붙들고 있던 문제부터 꺼낸다. 나는 비지배 자유를 핵심 가치로 두면서도 사회 보수적 태도를 기본값으로 삼는다. 동성혼이 대표적인 사례다. 두 원칙이 모순처럼 보인다는 것을 잘 알고있다. 그래서 조건을 달았다. 사회 보수적 가치를 기본값으로 두되,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충족되면 비지배 자유가 그것에 앞선다. 개인이 공동체로부터 구조적으로 이탈할 수 없는 상황, 국가가 특정한 도덕 판단을 모든 시민에게 강제하는 상황, 특정 집단이 병원 동의나 상속 같은 기초적·법적 보호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되는 상황이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사회 보수적 태도를 유지한다. 충족된다면 그 취약성만을 겨냥한 최소한의 제도적 조처를 하고, 그 이상의 변화는 숙의에 넘긴다. 지금까지 내가 찾아낸, 두 원칙을 함께 끌고 가는 방식이다. 완결된 해법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경제 정책은 다른 층위의 문제다. 정치철학과 달리 경제에는 시대와 조건에 따라 다른 처방이 요구된다. 케인스식 처방이 맞는 국면이 있고, 시장 자유화가 맞는 국면이 있다. 어느 한쪽을 이념으로 고정하는 일은 설계의 실패라고 본다. 그래서 두 단계로 나누어 판단한다. 어떤 정책이든 먼저 비지배 자유라는 필터를 통과해야 한다. 특정 집단을 자의적 경제 권력에 구조적으로 종속시키는가. 미래 세대에 재정 부담을 일방적으로 전가하는가. 경제적 지배 관계를 고착시키는가. 이 세 질문 가운데 하나라도 해당하면 성장 기여도와 무관하게 그 정책은 거부한다. 개발독재 모델이 제도보전주의 안에서 탈락하는 이유는 경제적 실패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 종속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필터를 통과한 정책들 가운데서만, 효과성을 기준으로 선택한다.
세 번째는 숙의 과정 자체의 문제다. 공론화를 신뢰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숙의가 조직화한 이익집단에 포획되면, 그 결과물은 숙의의 외형을 두른 기득권 정당화에 지나지 않는다. 의료 공론화에서 의사협회가 의제를 설정하거나, 경제 공론화에서 재벌이 주도권을 쥐는 구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를 막기 위해 네 겹의 장치를 포갠다. 정보를 균등하게 제공하는 독립 기구, 이해관계자를 숙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분리하는 원칙, 아일랜드 시민의회 방식의 무작위 시민 패널, 소수 의견을 공식 기록으로 남기고 결정의 비가역성에 비례해 검토 기간을 의무화하는 시차 적용이다. 네 장치는 병렬로 작동하지 않는다. 앞에 있는 것이 뚫리면 다음 것이 받아내는 방식으로 직렬 연결된다.
세 원칙은 각기 다른 질문에 답한다. 무엇을 결정할 것인가. 어떤 수단을 택할 것인가. 그 결정을 어떤 과정으로 내릴 것인가. 틀은 완성을 주장하는 순간 굳는다. 그러므로 이것을 완성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지금까지의 가장 정직한 설계라고만 적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