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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앙다 Jul 22. 2021

집에서 상추를 기르다가 (2편)

이번에도 상추 키우기 팁은 없음 주의

생명에 목적이 있을까? 인생의 목적은 무엇일까? 인간은 왜 사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을까? 한 번 살다가는 인생, 목적을 알고 이루고 가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상추의 목적은 무엇일까? 나도 식물을 잘 기를 수 있다는 증명? 상추와 적겨자 중 누가누가 잘 크나 경쟁? 아냐. 상추 너의 목적은 멋지게 커서, 맛있게 구워진 삼겹살을 잘 감싼 후 나와 하나가 되는 거야.




(1주차) 씨앗을 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3-4일을 기다리니 싹이 나왔다. 혹시 몰라 씨앗을 왕창 심었는데, 마치 그 모든 씨앗이 발아한 듯했다. 저 여기 있어요! 하고 손을 드는 아이처럼, 조그만 떡잎들이 참으로 귀여웠다.


(2주차) 생각보다 상추는  자랐다. 아니, 너무  자랐다. 다만, 키는 계속 크는데 잎사귀가 도통  생겨나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지금  아이들은 '웃자람' 겪는 중이다. 햇빛이 모자라거나, 영양분이 모자라서, 서로 경쟁하듯 키만 크고 있는 것이다. 웃자람을 해결하기 위해선 식물  간격을 넓혀주고, 잎사귀까지 흙이 높게 차도록 다시 심어주어야 한다.


(3주차) 웃자람의 고통을 겪은 , 드디어 떡잎이 아닌 새로운 잎사귀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두 개로 갈라진  사이에서 파릇한 잎이 돋아난다. 정말 신기하다.  이렇게 자라는구나.


느리지만 언젠가는 멋지게 자랄 거라고


(4주차) 성장이 더디다. 웃자람만 해결하면 쑥쑥 클 줄 알았는데, 새로 올라온 잎들도 키만 크고 통통해지지 않는다. 이미 잎이 여러 개 나와버려서 저번처럼 흙을 높게 쌓아줄 수도 없다. 햇빛이 부족한 걸까? 조심스레 밖에다 옮겨놓았다. 그랬더니 오히려 바람을 맞고 쓰러진다.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애들아!


(5주차) 밖에 내놓기엔 너무 여린 잎들이라, 조명을 쐬어주는 방법으로 변경했다. 조금씩, 더디지만 크고 있다. 뭔가 영양분을   방법이 없을까 찾다가 쌀뜨물이 좋다길래 뿌려주었다. 물을 흠뻑 주니 아직 피지 못했던 씨앗들이  발아한다. 너희 살아있었구나!


(6주차) 갑자기  위에 하얗고 보슬보슬한 솜털이 생겼다. 곰팡이다. 물을 많이   같지는 않은데 무슨 곰팡이지? 혹시 쌀뜨물을 과하게 준 건가? 그래, 쌀뜨물을 주지 말았어야 어. 인과관계가 있는지 확실하지도 않은데, 내가 했던 행동들을 후회해본다.  윗부분을 살살 퍼내어 곰팡이를 모두 제거했다. 미안하다, 제발  자라주렴.


(7주차) 느리지만 조금씩 다시 자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또 곰팡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번에 눈에 보이던 곰팡이를 다 없앴는데도 다시 생긴 걸 보면, 흙 속에도 곰팡이가 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화분 벽면을 따라 조심스레 흙을 들어보니 하얀 곰팡이가 덕지덕지.


그렇게 상추&적겨자 친구들과 작별을 고했다. 웃자랄 때 옮겨 심었던 것처럼, 아이들을 옮겨놓고 흙을 새로 사 넣어 다시 심어볼까도 싶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잎사귀들은 힘이 없었고, 이제 그만 날 보내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상추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자기가 원했던 목적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왔다 간 삶이라니, 그것이 안타깝고 불쌍해서 글을 쓴다. 너에게 목적을 부여한 것도 나니까, 죽어서도 너를 의미있게 기억할 사람도 나여야겠지. 네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난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꼈어. 그것만큼은 기억할게.


나도 언젠가 은 후 누군가에게 의미있게 기억될까? 비록 내가 이룬 것이 하나도 없더라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를 보며 행복했노라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집에서 상추 키우다가  생각을  한다.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당분간 식물은 새로 키우지 않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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