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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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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앙다 Jul 31. 2021

설명이 필요한 여자, 믿음이 필요한 남자

Some people are worth melting for.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북스타그램을 같이 해보려구.”

“오, 괜찮네. 역시 멋지다!”

“아직 어떻게 할 건지 설명도 안 했는데, 벌써 괜찮다고?”

“너라면 잘하겠지!”


그녀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이 일을 왜 하려는지, 어떤 방법이 최선인지, 이런저런 고민을 해본다. 그리고 시작하기로 결심했다면, 가장 먼저 전남자친구이자 현남편인 그이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녀는 설명을 시작한다. 남편이 그녀의 마음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녀는 그를 설득한다. 그녀의 말에 동의하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좌절감을 느낀다. 그에게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그녀가 왜, 어떤 방법으로 그 일을 하려는 지와 상관없이, 그는 그녀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그녀가 하는 일이라면, 이유불문 찬성이다. 그는 그녀를 신뢰한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그녀의 말이 모두 옳기 때문에 그는 반박하려들지 않는다.


그녀는 생각한다. 혹시 이 사람은 내 이야기가 듣기 귀찮아서 금세 동의해버리는 건 아닐까? 어떻게 전후사정을 듣지도 않고 오케이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내 방법이 옳은지, 부족한 점은 없는지, 정말 납득이 된 건지 답답하기만 하다. 그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포기할 생각도 있건만. 그녀는 그녀 자신보다 그녀와 그, 우리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가죽공예를 제대로 시작해보려고 해.”

“아, 그래? 왜 가죽을 선택했어? 어떻게 시작하려고?”

“재밌을 것 같아. 일단 해보는거지 뭐.”

“그러니까, 어디서, 어떻게 한다는 거야?”


그는 일단 신설동 가죽시장에 가서 가죽 몇 장과 각종 도구들을 사왔다. 일단 부딪혀 보는 것이 제일 빠르다고 생각한다. 시작하지 않으면 이 일이 나와 잘 맞는지,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잘 모르겠을 땐, 일단 Do it! 이제까지도 그렇게 해 왔고, 성공했던 경험도 있다. 사랑하는 그녀만 나를 믿어준다면, 이 세상에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다.


그러나 그는 이내 좌절감을 느낀다. 전여자친구이자 현아내인 그녀의 못미더운 눈빛이 그를 위축시킨다. 이제까지도 잘 해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이니 그저 날 믿어주기만 하면 되는데. 그녀는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설명을 필요로 한다. 마치 회사에서 기획서를 작성하듯이, 프로젝트 추진 배경, 추진경과, 향후일정을 요구한다.


그는 생각한다. 그녀는 정말로 나를 믿는 걸까. 그 자신이 그녀에게 이 정도도 신뢰를 주지 못했던건지, 그게 아니라면, 혹시나 그녀가 밑도 끝도 없이 신뢰를 줄 만큼은 그를 사랑하지 않는 건지 걱정스럽다. 그는 그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 그녀가 이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라면 차라리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 자신보다 그와 그녀, 우리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보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그들은, 그를 위해, 그녀를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쯤은 포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나에게 있어서, 내가 원하는 것도 포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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