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단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앙다 Aug 17. 2021

태극기를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달아야 하는지 아세요?

“태극기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달아야 해요?”


어릴 적에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광복절에 태극기를 달아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였다. 아마 초등학교 입학 전이거나 갓 입학한 시절이었던 것 같다.


하루는 0시부터 24시까지인데, 그럼 0시에 태극기를 달았다가 24시에 내려야 하는 걸까? 그럼 밤 열두 시까지 자지 않고 기다려야겠구나! 그랬더니 엄마는 아침 해 뜰 때 달면 된다며 그만 자도 된다고 하셨다. 그럼 내리는 건? 그건 해 질 때 내리면 된다고 하신다. 그렇구나- 그럼 해 뜰 때 깨워줘요! 하고 맘 편히 잠든다.


그러고 일어나보니 해가 뜬 것 같고, 몇몇 집 베란다에 이미 태극기가 달려있다. 아, 우리 집도 늦으면 안 돼. 엄마~! 빨리 태극기 달아야 해요! 라며 행복하게 태극기를 단다.




며칠  광복절을 지나면서 어릴  있었던  일이 생각나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태극기는 아침 7시에 달고, 여름에는 오후 6시에, 겨울에는 오후 5시에 내리는 거라고 한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하니, 군대에서 태극기 올리고 내리는 일을 했단다. 정말인가 찾아보니, 우리나라 (시행령 ) 매일의 국기 게양  강하 시각이 정해져 있었다. 해 뜨는 시각과 해 지는 시각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쨌든, 남편이 답을 얘기해줄 줄이야. 그리고 이런  법령에 적혀있을 줄이야.


어릴 땐 참 엉뚱한 질문들이 많았다. 늘 무언가를 배우고 새롭게 알아가는 시기였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린아이에게는 처음 알게 된 그 사실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대충 넘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광복절에 태극기를 달아야 한다니, 엄청 멋진 일이잖아! 어떻게 하지? 태극기가 우리 집에 있겠지? 하면서 몇 시에 달아야 하나-라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튀어나온다.


훌쩍 나이가 들고, 아는 게 너무 많아져버린 지금은 새로운 걸 발견해도 시큰둥, 매사가 대충대충이다. 오- 이런 게 있었네, 하고 끝. 본질에만 집중하면 돼, 그거 말고도 신경 쓸 일이 얼마나 많은데. 아~ 이거 대충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하고 설명서를 금방 덮어버린다.


그런데 왜 오늘은 어릴 적 그 시선이 그리울까. 남들이 신경도 안 쓰는 일을 궁금해하고, 태극기 다는 별 거 아닌 일이 세상 너무 중요했던 그 아이의 시선이 부럽다. 나는 다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다시 그렇게 작은 일에 기뻐하고 행복해 할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콩깍지거나, 사랑이거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