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와서 제일 좋은 점은 햇볕이 잘 든다는 것이다. 남서향 집인 우리 집은 정오가 지날 무렵 해가 들기 시작해서, 여름에는 오후 늦게까지 해가 길게 들어온다. 지난 여름 비가 온 뒤로 커다란 창문이 많이 더러워지긴 했지만, 들어오는 빛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서울의 먼지 때문인지, 비가 들이친 유리창이 마치 흙탕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더럽다. 얼마 전부터 이걸 닦아보겠다고 걸레로 손을 뻗어 닦아도 보고, 창문 닦는 도구까지 사서 닦아도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혁신적인 장비를 들이거나, 사람을 불러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역시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햇빛이 정말 감사한 하루였다. 여름이 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니, 거실에 누워있으면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다. 쏟아지는 해를 쐬고 있으면 기분이 참 좋다. 그러다가 이 창문의 흙탕물이 또 거슬리는데, 다시 한번 시도해볼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다가도, 아니다, 너무 귀찮다, 하고 금방 포기해버린다. 그냥 누워서 햇빛이나 쐬야겠다고 금세 마음을 고쳐 먹는다. 그러고 보니,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창문 닦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니.
그렇게 가만히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다 보면, 무슨 오지랖인지 모르겠는데, 이 시각에도 빛이 안 드는 곳에서 우울해하고 있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지 슬며시 걱정된다. 내가 볕이 안 들던 집에 살았던 적이 있기 때문일까? 우울한 사람은 광합성을 하면서 비타민D를 생성해주는 게 중요할 텐데. 밖에 나가서라도 햇볕을 좀 쐬어야 할 텐데.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집 밖에 나가기가 어렵고, 사람을 못 만나게 되어 만성적으로 무기력해지는 증상이 많다던데.
얼마 전에 결심한 게 있는데, 그것은 빅이슈 잡지를 사는 일이었다. 지하철 역을 나오다가 빨간 조끼를 입고 빅이슈 잡지를 파는 아저씨를 본 적이 있다. 알고 보니 노숙인들의 자립을 위해 만들어진 잡지이고, 잡지 판매금액의 일부분이 판매원에게 돌아가는 구조였다. 그걸 알고 나니 나중에 꼭 한 번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만 했지, 그 뒤로 몇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막상 잡지를 사지는 못했다. 가던 길을 멈추는 것도 영 어색하고, 그 잡지에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잡지에 나온다고 살 만큼 좋아하는 연예인도 없지만), 왠지 말 거는 게 쑥스럽기도 하고(?).
이러다가는 영영 못 살 것 같아서, 이번주 주일에 남편에게 선언했다. ‘나 빅이슈 잡지 살거야!’ 그리고 바로 어제, 신도림 역을 나갈 기회가 와서 드디어 잡지를 구매할 수 있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멈춰 서서 잡지를 사고 있자니, 이 사소한 일이 그분에게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참 행복했다. 앞으로 매달 사야겠다.
별 것 아니지만, 찾아보면 다른 일들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되는 일. 한 줌의 햇빛이 없는 곳에도 등불을 밝혀 환하게 할 수는 있으니까. 서로에게 빛이 되어주라고 사람에게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 지금 사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굴까. 고민하며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