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단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앙다 Sep 18. 2021

눈 뜨고도 못 보는 사람

보이는 것들은 잠깐이나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하다.

 기분이 울적해서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햇빛이라도  쐬고, 시원한 크림 캐러멜 루이보스차랑 달달한 도넛을 함께 먹어야겠다, 싶어서 그냥 나갔다.  와중에도 카페인이 없는 루이보스차를 생각하는  보니, 아직 미련이 남아 있는  같다. 오늘 아침 확인한  줄짜리 임테기를 보고도 말이다. 아마도 나는   줄이 너무 성급한 날짜에 확인해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하고, 내일도, 그다음 날도 테스트기를 해볼  같다.


 혹시나 임신일까봐 그 좋아하던 커피를 끊은지도 세 달 째다. 즐겨 마시는 차도 포트넘 앤 메이슨 홍차에서 TWG 루이보스차로 바꿨다. 생각보다 괴롭지는 않았다. 한 때는 카페인 없이는 오후를 넘기기가 어려웠는데, 지금은 신기하게도 잘 버티고 있다. 이런 나의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한민국 합계 출산율이 벌써 0.84명으로 떨어졌다는데, 난임시술로 탄생한 아가들은 늘어나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다. 지난해에는 태어난 모든 신생아 중 10% 이상이 난임 시술 지원을 받아 태어났다고 한다. 누군가는 여전히, 간절히 원한다는 거겠지.


 루이보스차와 도넛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꽃집에도 들렀다. 예쁜 꽃을 집에 두면 기분전환이 좀 될까 싶었다. 여러 꽃들 앞에서 한참을 고르고 있자니, 주인장이 함께 써놓은 꽃말들이 눈에 들어온다. 영원한 사랑, 우정, 고백, 수줍음… 그중에서도 ‘희망’이라는 꽃말의 ‘노란 튤립’이 눈에 띄었다. 희망이라는 말이 왠지 마음에 와닿았는데, 꽃이 너무 작았다. 다른 튤립들에 비해서 꽃봉오리도 작고, 활짝 피지도 않았다. 꽃말은 좋은데, 딱 한 송이 남은 이걸 사, 말아?!


 그런데 생각해보니, 희망이라는 꽃말을 앞에 두고도 작은 꽃봉오리에 고민하는 내 모습이 웃겼다. 지금은 작을지라도, 나중엔 크게 피어날 수 있기에 희망인 건데. 아니, 작은 아이도 아름답게 꽃을 피웠다는 것 자체가 희망인 건데 말이다. 두 눈이 감겨서 맹인이 아니라, 마음이 닫힌 내가 맹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앞에 두고도 희망을 보지 못 하다니, 내가 시야가 좁았구나 싶다.


 노란 튤립 한 송이를 사서 집에 들어왔다. 유리병에 꽂아 놓으니, 꽃봉오리가 작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다른 꽃들과 비교하지 않으니 그 자체로 정말 예쁘다. 모든 사물과 사람을 이렇게 보아야겠다. 그 자체로, 오래오래 예쁘게. 그리고 또 희망을 가져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줌의 햇빛이 없는 곳에도 등불을 밝힐 수는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