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새로 올라오는 인턴 모집 공고들을 유심히 확인하고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마땅한 자리가 올라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는 것뿐이다.
장모님을 비롯한 주변 어른들의 조언은 비슷하다. '기도하라'는 것.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그래서 기도하라는 말을 수백 수천 번을 들어왔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것이었다.
들어주신다. 아마도 여기엔 내 소원을 들어주신다, 다시 말해 이루어지게 해주신다는 것과, 내 말을 잠잠히 있는 그대로 들어주신다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본다.
돌아보면 나 스스로 '아 기도해야겠다'라고 들었던 때는 주로 막막한 상황에 놓여있을 때였다.
수능 시험을 며칠 앞두고 마음이 불안했을 때, 학사장교 시험에 떨어지고 일반 병으로 입대하게 됐을 때, 아이가 아토피 때문에 새벽마다 긁으며 괴로워할 때 등등.
주로 나 스스로 어찌할 수 없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도 마음이 불안하고, 원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에 절망할 때. 이렇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번민을 넘어설 때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상황도 그렇다.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준비는 다 했고 이제 잠잠히 올라오는 공고들을 확인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도한다. 좋은 사람이 있는 곳, 힘들더라도 여러모로 배울 수 있는 곳(반면교사로 배우는 곳이 아니라) 이런 기관으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뭔가 찜찜한 게 있다. 이렇게 원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나면 더 그분께 할 말이 없다는 것. 그래서 좀 무안하다. 내 기도가 싱거운 것 같기도 하고 기도를 하고나도 마음이 개운치가 썩 개운치가 않다.
어른들은 기도는 오래 하면 오래 할수록,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좋다고 얘기하신다. 나도 언젠가는 맘먹고 알람을 1시간 후로 맞춰놓고 기도를 해봤다. 그렇지만 아무리 하나님이 내가 하는 이야기를 다 잠잠히 들어주신다고는 하지만 뭐랄까 리액션이 바로바로 없으시니 뭔가 혼자 독백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식물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나무 밑동에 살아 있는 부분은 지름의 10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바깥쪽이고, 그 안쪽은 대부분 생명의 기능을 소멸한 상태라고 한다.
동심원의 중심부는 물기가 닿지 않아 무기물로 변해 있고, 이 중심부는 무위와 적막의 나라인데 이 무위의 중심이 나무의 전 존재를 하늘을 향해 버티어준다.
존재 전체가 수직으로 서지 못하면 나무는 죽는다. 무위는 존재의 뼈대이다.
- 김훈
얼마 전 책을 읽다가 김훈의 이 글을 발견하고는 '어, 이게 바로 기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뜩하고 지나갔다. 사전을 보니 '무위'란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상태를 뜻했다. 그렇다면 기도는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활동, 작업, 노력을 잠깐 내려놓고 신 앞에서 그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나는 뭔가를 할 때 이게 과연 생산적인 일인지, 하고 나면 뭔가가 남는 일인지 따지는 편이다. '글쓰기'도 하고 나면 글이라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남기 때문에 더 애착을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기도는 가장 비생산적인 활동이다. 모든 일을 멈춘 채 그저 신의 은총을 구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김훈의 통찰을 다시 살펴본다.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무위와 적막의 세계인 나무의 중심부가 실은 나무라는 살게 하는 존재의 뼈대가 된다. 무위와 적막의 세계. 기도가 딱 그렇지 않나.
교회에 오래 다닌 어른들이 그토록 말하는 말. 기도해야 산다는 말도 이와 비슷한 깨달음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신앞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가, 가장 비생산적으로 보이는 그 상태가 어쩌면 존재를 구축하는 뼈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
이 생각을 곱씹으니 아무것도 안 하는 그 상태를 못 견뎌했던 내가 어제는 깜깜한 방에서 그 잠잠하고 적막한 고요 속에 조금은 거부감 없이 녹아들 수 있었다.
인턴 자리를 구하기 전까지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기다리는 것 밖에는 없다. 여전히 기도하는 그 시간의 적막이 좀 답답하긴 하다.
그렇지만 무위가 존재의 뼈대라는 통찰을 곱씹으며, 이 기회에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 그저 은혜를 구하고 있는 상태에 좀 더 익숙해지는 연습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