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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곪는다. 회사에서.

그러나 그걸 꺼내 이야기할 수 있다면

by 김이안


속에서 욕이 나왔다. 그리고 이날 올해를 끝으로 반드시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위치상 대표님과 자주 마주쳐야 하는 자리에 있다. 이 점이 힘들다. 그분의 거친 언사와 예상치 못한 분노 표출이 그동안 마음에 생채기를 입혀왔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이런 부정적인 말과 기운들이 마음에 잠시 맴돌다 사라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번에는 아니었다. 이번엔 그 히스테리와 같은 분노 표출이 내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듯했다. 어떤 무형의 힘이 내 오장육부를 들쑤시며 내상을 입히는 느낌이었다.


'속이 곪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정말로 속에 염증이 생기고 진물이 나는 것 같았다. 마음뿐 아니라 몸이 상하고 있다는 이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그래도 이 분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려 하고, 그간의 삶의 경험들을 존중하려 했다. 또 좋을 땐 또 나름 좋은 분이었기에 이렇게 갑작스런 '퐈이어'상태가 될 때 '또 시작하셨군'하고 견뎌보려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한계에 다다른 듯하다. 아마 가중된 업무와 스트레스 때문에 마음이 더 지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제는 안 되겠다, 나는 여기까지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올해를 끝으로 떠나야겠다고 스스로 결론 내렸다.





'어떠한 슬픔도 그것을 이야기할 수 있으면 견뎌낼 수 있다.' - 이사크 디네센


이 일이 있은 후 뭔가를 쓰기가 어려웠다. 어떤 찌꺼기가 마음에 쌓여서 생각이 나가는 통로를 막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이 문장을 만났을 때,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이때의 감정과 상황들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지만 써보자. 고통스러워도 일단 써보자.'


그러면서 속에서 느낀 분노, 혐오, 증오의 감정들을 풀어써보니 마음 응어리가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쓰다 보니 전에 김난도 교수가 yes24와의 인터뷰 때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는 글쓰기가 'ctrl c, ctrl v'가 아니라 'ctrl x, ctrl v'인 것 같다고 비유했다. 머릿속에 있던 혼란스러웠던 것들을 일단 쓰고 나면 그 고민들이 글로 옮겨간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어느 블로그 이웃 분은 글쓰기가 '감정의 배출구' 역할을 한다고 표현했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나도 방금 '분노' '혐오' '증오'라는 단어를 쓰고 나니 이 감정들이 내 마음에서 상당 부분 배출된 것 같다.


아직도 몸과 마음에 입은 내상은 다 회복되지 않았다. 여전히 응어리는 남아있다. 그래도 분명한 건, 이렇게 풀어내어 쓰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것. 조금이나마 생기를 되찾았다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남은 기간, 그때그때 이렇게 글로 마음의 감정을 풀어내며 버텨내는 것이 최선일까. 효과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닌데. 아니다, 그래도 일단 당장은 그만둘 수 없으니 버티려면 내 마음 안에 스며든 독을 빼내 글로 옮겨야 겠다.



바람이 있다면, 이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이 글로 옮겨지며 단순히 감정의 쓰레기가 모아진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다른 사람에게도 위로와 공감을 주는 그런 글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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