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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악의 갑질을 당하며

나 스스로 당당해져야 한다

by 김이안


아침부터 왜 이리 마음이 심란하고 위축이 되었을까. 나 스스로 지금의 상황에, 지금의 내 처지에 당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설마,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도장을 받으러 가서 직접 얼굴을 보면 꽤 껄끄럽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래도 이런저런 소리는 들어도 기관 이동 서류에 도장은 찍어줄 거라 생각했건만 오산이었다.



단순히 괘씸해서 안 만나준 게 아니었다. 괘씸한 건 괘씸한 것이고, 설마 내가 도장이 필요한 걸 알면서도 일부러 안 만나주는 건 아니겠지 했는데. 그동안 의도적으로 연락도 받지 않고 만나주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급기야, 지금 새로 간 기관의 기관장님이 나 혼자서는 행정처리가 불가능할 것임을 파악하고 직접 전화를 걸어주셨다. 속상하시겠지만 그래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동을 허락해달라고. 내가 보는 앞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주셨다. 그리고 결국 이동 승낙을 받아주셨다.



이로써 그동안 잠을 못 자게 했던 이 행정 처리가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바로 다음날 그 기관장은 태도를 바꿔서 자신은 도장을 찍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어쨌든 처음 시작한 기관에서 끝까지 과정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그만둔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려도 소용이 없었다. 같이 가주셨던 팀장님이 거듭, 그래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행정처리를 도와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새로 간 기관에 정식 인턴으로 올라가 있지 않은 상태다. 이동 처리 마감 기한은 2월 초. 지금의 나는 불확실하고 애매한 상황이다. 그래서 뭔가 모르게 위축되어 있었던 거다.



나 스스로 당당해질 필요가 있겠다. 지금의 기관장님은 나의 상황에 안타까워하시며 그쪽에서 도장을 찍어줄 수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시험을 다시 볼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나도 수긍하고 최악의 경우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암담한 상황에 대한 쓴물이 마음 깊숙한 데서 불쑥불쑥 올라온다. 지금 나는 인생 최악의 갑질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이 상황에 대한 분노와 씁쓸함.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불안함. 수치심. 부끄러움. 이것들이 하루 종일 불편하고 심란하고 주눅 들어 있었던 마음의 원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나 스스로 당당해져야 한다. 시험을 다시 봐야 한다면, 솔직히 갑갑하지만 다시 준비해서 보면 된다. 다만, 아내가 지금 너무 속상해하고 있는데 잘 어르고 달래는 수밖에. 다른 사람은 어찌 생각하더라도 일단 내가, 스스로 떳떳하고 당당해져야 한다.



2월 초 행정처리 마감 기한 전에 그 기관장이 마음을 바꾸어 도장을 찍어주겠다고 하면 감사한 거고, 끝까지 이렇게 곤조를 부려서 이동 처리가 안 되면 시험을 다시 보자.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건 다 했으니 이제는 더 이상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고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자책하지도 말자.



다시 시험을 본다는 건 막막한 것이고, 처음부터 과정을 다시 시작하는 건 정말 많이 돌아가는 것이긴 하다. 그렇디만,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음을 단디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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