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궤양성 대장염 환자다. 궤양성 대장염이란 대장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을 뜻한다. 2018년 초부터 대변에 피가 배어 나와서 내시경 검사를 했더니 이렇게 진단받았다.
스트레스가 주원인인 듯 싶다 . 2017년 하반기에 대학원 마지막 학기였고 논문이 통과가 되어야 졸업을 할 수 있었건만 논문이 도무지 진전이 안됐다. 졸업을 제 때 못하면 여러모로 상황이 꼬여버리기에 당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실제로 궤양성 대장염은 아직 정확한 발병 원인을 모르는 병이다. 내 증상이 혹시 대장암과 관련이 있지는 않을까 검사 결과 전에 걱정을 좀 했지만 결국 아니어서 안도하긴 했다. 그런데 궤양성 대장염은 질병코드가 암과 같은 난치성 질환으로 분류된다고 해서 적지 않게 놀랐다.
그래도 이 병은 일상생활을 하는데 큰 무리는 없고 병원에서 지정해둔 약만 매일 투여하면 되기 때문에 크게 힘들거나 고통스럽지 않다.
4개월에 한 번씩 서울에 있는 병원을 찾는다. 큰 병원이라 아예 염증성 장질환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센터가 따로 있다.
처음 병명을 알고, 이게 희귀성 질환임을 알았을 때 '희귀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외로움을 느꼈다. 그런데 이 병원에 오면 나와 같은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대기실 의자에 여럿 앉아있다.
그래서 처음 이 병원을 찾았을 때, 나와 같은 병을 가진 이들이 이렇게 있다는 걸 보는 것만으로 마음에 조그마한 위안을 얻었다. 동시에 이들도 처음에 참 당황스럽고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그동안에는 4개월마다 한 번씩 병원을 찾았는데 오늘은 의사 선생님이 6개월 후에 보자고 하셨다. 단 매일 약을 챙기는 걸 잊지 말고 비타민 D가 부족하지 않게 햇빛을 쬐고 영양제를 챙겨 먹으라고 하셨다.
이 큰 병원을 찾을 때마다 사람에게는 수십 가지의 병이 있음을 다시 상기하고 온다. 특히 암센터 유리문 앞을 지날 때는 잠시 죽음을 더 가깝게 느껴보곤 한다.
이게 나쁜 생각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병원에 다녀오면 위안을 얻는다. 나처럼 어딘가가 아픈 사람들이 많구나. 나만 아픈 게 아니구나.
아니, 그보다도 나는 분류만 희귀성 난치병일 뿐 어디든 힘차게 걸어 다닐 수 있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지 않나. 염증만 가라앉히는 약만 있을 뿐 아직 치료제가 나오지 않았기에, 어쩌면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병이지만, 그래도 이전과 다름없이 생활할 수 있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어쩌면 이 병이 역설적으로 앞으로 내 건강을 더 지켜줄지도 모른다. 아직 치료제가 없으니 다만 내가 할 일은 하루에 만 보 이상씩 걷고, 햇빛을 쬐어주고, 야채와 자연식들을 잘 섭취해주는 것. 이렇게 꾸준히 관리해주면 비록 병을 안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건강이 유지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어느덧 집 앞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아이와 아내를 떠올린다. 오늘은 아이를 더 진하게 안아주어야지. 요즘 아이 학교 가는 문제로 예민한 아내의 푸념을 더 잘 받아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