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휴대폰을 바꿨다. 생각지 못한 타이밍이었다. 원래는 아내가 7월에 복직을 하면 사준다고 했었다. 아무래도 지금은 내 수입이 전부라 재정상태가 좀 빠듯하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아내가 휴대폰을 확인하고는 빨리 집에 가야 한다고 보챘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어갔다.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는데 아내가 또다시 보챈다.
"이레씨 이리 와 봐! 빨리!"
"어 알겠어, 잠깐만"
"지금 빨리 안 오면 후회할 걸, 빨리 와봐"
자꾸 보채는 통에 살짝 짜증이 난 채로 거실에 가니 아내가 작은 택배 상자를 내놓았다. 그런데 순간 직감적으로 안에 있는 물건이 뭔지 떠오르는 게 아닌가.
택배 아르바이트를 할 때 고가 상품으로 자주 분류되었던 그 박스 크기. 한 번은 아파트 단지를 배송하는데 어떤 사람이 오더니,
"죄송하지만 저희가 잠시 후에 어디를 가서요, 혹시 저희집꺼 먼저 꺼내 주실 수 있으세요? 죄송합니다."라고 했던 그 고가 상품.
아내에게 이 안에 든 게 뭔지 알 거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 바로 새 휴대폰이었다.
최근에 나온 휴대폰 중에서도 가장 성능이 좋은 고가의 모델이었다. 나도 대략 가격을 알고 있었기에 선뜻 기뻐할 수가 없었다. 원래는 휴대폰을 바꿔도 최대 80만원 대의 자급제폰을 사려고 했기 때문이다.
"와, 근데 내가 이거 써도 되는지 모르겠네. 이거 너무 비싼데."
"사전 예약할 때 주문 걸어놨어. 살지 말지 진짜 고민하다 샀어. 나한테 잘해."
고맙고 또 기쁘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고. 휴대폰 박스의 실을 뜯으면서도 계속 주저주저했다. 박스 안에는 새 휴대폰이 매끈한 검은 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전에 쓰던 휴대폰의 자료를 새 휴대폰으로 이관하고 정상적으로 새 휴대폰을 쓰기까지 거의 5일이 걸렸다.
자료 이관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요즘 삼성 휴대폰에는 'Smart Swich'라는 어플이 있어서 전에 있던 휴대폰의 사진과 영상들, 삼성노트의 메모들까지 싹 다 옮겨주었다.
4년 전에 휴대폰을 바꿀 때는 구글계정으로 연락처와 예전에 썼던 어플들만 옮겨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전에 쓰던 휴대폰의 SD카드에 보관할만한 사진과 영상 같은 자료들을 추려서 복사해놓았다.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그래도 새 휴대폰에서도 계속 사진과 영상들을 활용하려는 것이었기에 열심히 정리하고 복사했다.
하지만 새 휴대폰의 유심 트레이를 열어보니 이럴 수가, 이 휴대폰에는 sd카드를 추가 삽입할 수가 없었다. 아니, 아무리 내장 메모리가 256G이더라도 추가로 sd카드를 넣어야만 저장공간을 넉넉히 쓸 수 있는데. 많이 아쉬웠다. 열심히 sd카드에 사진들을 추린 시간들이 허사가 된 거다.
어쩔 수 없다 - 생각하고 'Smart Switch'로 이관 작업을 하는데, 이게 웬걸, 전에 쓰던 휴대폰의 sd카드에 있던 사진과 영상들도 싹 다 새 휴대폰으로 옮겨지는 거다.
이렇게 신기하고 감사할 수가. 전에 있던 만 장 가까이 되는 사진들을 새 휴대폰에서도 이어서 꺼내볼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추억들이 다시 살아난 기분이었다. 이렇게 모조리 옮겨주다니. 세상 참 좋아졌구나!
휴대폰을 바꾼다는 건, 특히 나같이 꽤 오랜 기간 쓰고 휴대폰을 바꾼다는 건 삶의 한 페이지가 바뀌는 기분이 들게 한다. 바로 전 휴대폰에는 이전 기관에서 인턴을 할 때의 기억과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퇴사를 하고 9개월간 재충전과 고민과 방황의 시기의 기억들도.
이제 나는 새로운 기관에서 다시 인턴을 시작하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그 시기에 맞춰 새 휴대폰을 선물 받게 되었다. 정말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생각지 않게 최신 휴대폰을 선물 받았으니 인턴이 끝나는 4년 후까지 아껴가며 잘 쓸 생각이다.
이 4년의 기간 동안 또 어떤 기억과 추억들이 이 휴대폰에 담기게 될까. 4년 후 나는 또 어떤 모습일까를 어렴풋이 생각해본다.
그런데 4년 후까지 이 휴대폰을 쓰려면 일단 사진과 영상 정리를 대대적으로 다시 해야 될 것 같다. 어쨌든 256G로 지난 4년의 기억과 앞으로의 4년의 기억을 담으려면 꽤나 많이 추리고 추리는 작업을 해야 될 터.
꼭 보관하고 싶은 사진과 영상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삭제해야 한다. 다시 4년을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 4년의 내 발자취들을 돌아보고 정리해야겠다. 만 장 가까이 되는 사진과 자료들이기에 시간이 꽤 걸리고 지난한 작업이 되겠지만, 오늘부터 추억여행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