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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안 May 18. 2022

무기력할 때 극 무기력한 책 읽기

<권태> _ 이상


어서 - 차라리 - 어두워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 - 벽촌의 여름날은 지리해서 죽겠을 만치 길다. (113)



우울한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텅 빈 것 같기도 하고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에 휩싸였을 때, 이 책을 읽고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기력하고,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을 때가 있다. 얼굴에 생기가 사라지고 뭔가 큰 문제는 없는데 마음이 메말라가는 것 같은 때. 요즘 들어 그러한,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그런 상태에 자주 빠진다.



바쁘고 분주할 때는 휴일을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휴일이 되면 마음 편히 쉬지 못하고 마음이 방황한다. 그렇게 그리던 한낮의 여유 시간이 생겼건만 불안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이 나를 짓누른다.



권태로우면서도 뭔가 더 성장하고 더 쌓아야 할 것 같은 조바심. 무기력하면서도 그 상태를 못 견뎌하는 초조함. 이와 비슷한 불안한 심리를 '권태'에 등장하는 '나'에게서 발견한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 이상으로 괴로운 상태가 또 있을까. 끝없는 권태가 사람을 엄습하였을 때 그의 동공은 내부를 향하여 열리리라.


그리하여 망쇄(몹시 바쁨)할 때 보다도 몇 배나 더 내면을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개울가 앉은 나에게는 자의식 과잉조차 폐쇄되었다. 이렇게 한산한데 극도의 권태가 있는데 동공은 내부를 향하여 열리기를 주저한다 (121)



넘쳐나는 시간 속에 질식해버릴 것 같은 나. 뭔가는 해야겠는데 무기력에 그냥 취해 있고픈 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산 시체처럼 깔아져 있는 나를 보는 듯 하다. 이런 게 나 뿐 아니라 적어도 <권태>속 '나', 이 작품을 쓴 '이상'도 이와 비슷한 감정을 겪었다는 것, 유사한 고통에 힘겨워했다는 사실이 위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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