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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면, 이해가 되면

택배 기사의 경험

by 김이안



"새벽에 운동하러 나가는데 택배차가 꼭 그 시간에 112동 앞에 주차해놓고 있어요. 내려와서 미안하다는 표시만 해도 화가 덜 날 텐데 그러지도 않고 그냥 차에 탄다니까요"


"아니 배송을 옆 건물 사무실로 잘못 배송했으면 다시 원래 사무실로 배송해야지 못 한다고 오히려 적반하장이라니까."



이번 주에 회사에서 들은 택배기사에 대한 불만 섞인 말들이다. 물론 누구라도 화가 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작년에 택배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택배 기사분들이 왜 그렇게 했는지 머릿속에서 상황이 그려진다.



보통 아파트 배송의 경우 몇 동, 몇 호 라인에 배송을 하게 되면 탑차를 최대한 라인 입구에 가까이 붙여 놓아야 한다. 그래야 물건을 가지고 이동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벽 배송의 경우, 낮과는 달리 아파트 단지 내에 차가 가득 주차되어 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잠시 이중 주차를 한다. 그러다 보니 때로 차량 출입로를 막게 되기도 한다.



배송을 직접 해보니 배송 기사 입장에서 가장 꺼리는 배송 중 하나는 한 곳에서 무겁고 부피가 큰 물건을 대량으로 시킬 때다. 택배 회사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쿠O의 경우 배송한 장소 개수를 기준으로 실적이 반영된다. 따라서 한 집에서 무겁고 큰 물건 여러 개를 시켜서 이를 배송하기 위해 몇 번을 왔다 갔다 하고, 시간을 들여 힘들게 배송한다 해도 결국 한 집을 배송한 꼴이 된다.



그러니 택배 기사 입장에서는 한숨이 푹 나오고 짜증이 난다. 순전히 택배 기사 입장에서 말이다.



종종 어떤 집은 이것저것 주문을 많이 해서 물건이 10개가 넘어가고 한 박스가 넘어가게 주문을 하기도 한다. 아파트 배송 때 이런 고객이 있으면 낭패다. 예를 들어 108동 3-4라인에 배송을 할 때 카트에 3-4라인에 사는 고객들이 주문한 물건을 다 싣고 제일 높은 층에서 내려오면서 배송을 해야 한다. 즉 카트에 3-4라인 고객들이 주문한 물건을 전부 실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것. 한 집에서 물건을 너무많이 시킬 때 그런 일이 발생한다.



물론 주문하는 고객이야 몇 개든 얼마든지 주문할 수 있다. 그러나 순전히 배송기사의 입장에서, 이런 고객의 집을 배송할 때는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오늘 오후에 있었던 일도 상황이 그려졌다. 물론 정확한 위치의 사무실로 배송 못한 기사분의 잘못이 맞다. 그런데 아까 회사 직원 분이 주문한 건 행사 때 쓸 대형 은박 매트 롤 8개. 부피가 커서 한 번 나를 때 2개씩 밖에 못 나른다.



그렇다면 총 네 번을 왔다 갔다 했을 터. 엘리베이터를 이용해도 시간이 꽤 걸렸을 것이다. 그렇게 배송한 걸 다시 옆 건물 사무실로 옮기는 게 가뜩이나 시간이 촉박한 택배 기사 분은 짜증이 났을 것이다. 자신이 실수했더라도 말이다.



직접 배송기사의 입장을 경험해보니까,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상황들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이해가 간다. 이래서 경험의 폭이 넓어지면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고 하는 걸까.



개인적으로 아파트 배송을 할 때 가장 눈치가 보였을 때는 엘리베이터를 잡고 층층이 배송을 할 때였다.



예를 들어 3층 8층 12층 15층에 배송을 하게 되면, 일단 15층까지 올라간 다음 나머지 3층, 8층 12층 버튼을 눌러서 내려오면서 배송을 한다. 그러다 13층에서 어떤 주민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면 그 주민의 입장에서는 1층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나 때문에 3층 8층 12층을 거쳐야 한다.



이런 경우 참 눈치가 보이고 식은땀이 났다. 어떤 분은 이해해주면서 오히려 문 앞에 물건을 두고 올 때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주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한숨을 푹 쉬면서 마지못한 표정을 짓는다.



아직까지는 내가 집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갈 때 그런 상황을 마주하지는 못했다.(보통 아파트 배송은 사람이 많이 왔다갔다 하지 않는 오전10-11시경이나 오후3-4시경에 많이 한다.)



그러나 만약 위와 같은 상황을 마주한다면 내 경험을 떠올리며 1층으로 내려갈 때까지 층층이 설 때마다 기꺼이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주지 않을까. 많이 급할 때면 '수고하세요~' 한 마디 던지고 계단으로 뛰어 내려갈지도 모르겠다.



이해하면, 누군가의 상황이 이해가 되면 한가득 낼 화를 조금 덜 내게 되고, 한 가득 낼 짜증을 조금 덜 내게 된다. 이해하면. 이해가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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