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벗기 싫다. 마스크가 '나'를 가려주기 때문이다. 퇴근 후 혹은 주말에 밖에서 예상치 못하게 아는 사람을 만나면 당혹스러워하는 나. 그런 상황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조심한다. 길을 돌아서 간다. 왠지 이 시간대, 이 장소에서 아는 누군가를 마주칠 것 같으면 되도록 가지 않는다.
마스크를 쓰면 얼굴을 가릴 수 있어 안심이 된다. 누가 나를 알아볼 확률이 확실히 줄어드니까. 마스크 때문에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다고 하지만 그게 편할 때가 많다.
사무실에서도 마스크 덕분에 표정을 감춘다. 눈만 보면 그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아는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쓴다. 사무실에 있는 동안 대부분 내 속에서 나오는 진짜 표정은 굳어 있으므로. 마스크를 쓰니 표정관리에 드는 에너지 소모가 확실히 덜하다.
특히 회의시간, 마스크를 안 쓰고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반드시 챙긴다. 마스크를 쓰면 방어력이랄까 눈에 보이지 않는 쉴드가 1% 더 생긴다. 빨리 끝났으면 하는 지루하고 졸리고 답답한 표정들을 마스크 뒤로 숨길 수 있다. 부장님 혹은 대표님이 내 얼굴 전체를 볼 수 없고 눈만 볼 수 있기에 눈에만 신경 쓰면 된다.
마스크는 또한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내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한다. 그룹으로 여러 명이 함께하는 대화에 피로감을 쉬이 느낀다. 그래서 웬만해선 회사에서 그런 대화 자리를 피하려 하고 거리를 둔다. 때로 마스크를 끼고 타이핑을 하거나 노트에 뭔가를 열심히 적는 척을 한다. '나는 지금 바쁘니 말 걸지 말아 주세요'라는 무언의 표현이다.
마스크는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누군가와 마주할 때만 벗고 싶다.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계속 얼굴과 표정을 감추고 싶다. 이제 곧 야외 뿐 아니라 실내에서도 마스크 착용 의무가 사라지면 이 시기를 그리워 할 게 분명하다. 자연스럽게 내 표정과 얼굴을 마스크 뒤로 가릴 수 있었던 지금의 이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