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웃으면서 얘기 하지만 진짜로 기도해주셔야 돼요."
이 말이 마음에 남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저녁마다 술을 계속 먹게 된다는 고민을 털어놓으셨다. 당신이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한참 전에 끊었던 술을 저녁마다 조금씩 먹게 되었다고.
다음날 문득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4개월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약주를 좋아하셨고, 당신에게도 술은 어른에게 먼저 배워야 한다며 먹는 법을 처음 알려주셨다는 얘기. 살아계실 때 약주를 즐겨 드셨다는 이야기.
아버지가 요양원에 계실 때 어떻게든 예수님을 영접하고 돌아가시길 기도했지만 결국 그렇게 되지 못한 것 같다는 이야기.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와는 다르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그렇게 마음이 허하고, 한가운데 구멍이 뚫린 것 같고, 가슴이 아팠다는 이야기.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죄책감 같은 것들이 뒤엉켜 권사님을 괴롭게 했을 것이다.
특정 물건, 음식, 공간 같은 것들은 어떤 사람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진하게 떠오르게 한다. 나의 경우엔 육개장 컵라면이 그렇다. 초등학교 3학년 즈음 아버지가 서해의 한 해수욕장에 데리고 가주셨을 때, 물놀이를 하고 중간에 먹은 그 육개장 컵라면의 국물 맛과 냄새와 보들보들한 면의 식감이 마음속에 각인이 된 듯 남아 있다.
어머니가 평소 인스턴트 음식은 거의 손을 못 대게 했고 특히 컵라면은 먹으면 큰일 나는 해로운 가공식품이었기에, 아버지가 그날 어머니 몰래 사주신 그 컵라면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한동안 피치 못할 일로 아버지를 볼 수 없었을 때 마포대교 근처 편의점에서 먹은 그 육개장 컵라면도 아버지에 대한 진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내게 육개장 컵라면이 그러했던 것처럼, 권사님도 어쩌면 살아생전 아버지가 드셨던 그 약주를 찾아드시고 계신 건지도 모르겠다.
너무 오래 죄책감을 갖고 있지 않으셨으면 한다. 기독교는 언제나 '구원의 여부'에 민감한데, 사실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여부는 하나님만 알 뿐이다. 그리고 내가 부모님이든 자녀든 누군가를 아무리 아끼고 사랑한다 해도, 사실 나보다 더 깊이 아끼고 그 사람을 사랑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과연 천국에 가셨을까' '구원받으셨을까' 이런 마음은 조금 더 내려놓으셨으면 좋겠다. 자유해지셨으면 좋겠다. 특히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명절이라 더욱더 아버님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나실 터. 그래도 어제보다 조금은 더 평안함과 자유함이 마음에 깃드시기를, 잠시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