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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안 Sep 15. 2022

책 <신화의 힘>, 신화 속엔 나의 잠재력이 숨어있다!

어려운 책이지만 그래도 일독 권유 ☆︎ !!



읽는 데 두 달이 걸렸다. (7.13 - 9.15)

정여울 작가가 책 <끝까지 쓰는 용기>에서 강력히 추천한 게 읽게 된 계기였다. 일단 <끝까지 쓰는 용기>란 책이 워낙 좋아서 정여울 작가를 믿고, <신화의 힘>을 구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우, 쉽지 않은 책이었다. 독서모임을 통해 같이 읽지 않고, 혼자 읽었다면 중간 즈음 읽다가 길을 잃고 덮어 버렸을 게 분명했다. 그만큼 술술 잘 읽히는 책은 아니었고, 신화와 관련된 생소한 개념들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필요한 책이었다.



책은 신화와 영웅에 대해 다룬다.  신화에는 영웅이 등장하는데 영웅이 겪는 모험의 여정을 내 삶에도 반영하면, 갖가지 역경과 장애물들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은 신화학자인 조셉 캠벨과, 저널리스트인 빌 모이어스의 대담 녹화를 정리해서 엮어낸 대담집이다. 일단 조셉 캠벨 이 사람은 세계를 두루 다니며 신화를 두루 섭렵하고 연구한 신화학자다. '신화'하면 바로 조셉 캠벨의 이름이 언급될 정도로 방대한 연구를 하고 많은 저서를 펴냈다고 한다.


대담 진행자인 빌모이어스는 캠벨 교수와 8년여간을 교류했으며 를 바탕으로 미국 PBS 방송을 통해 캠벨 교수와의 신화 대담을 진행하게 됐다.


신화와 영웅이라는 다소 알쏭달쏭한 주제들이 그나마 읽어가기 좀 더 수월하게 다가온 것은 내용 전개가 이런 대담, 대화의 형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리라.



조셉 캠벨은 말한다. 우리 안에 숨겨진 힘, 잠재력을 촉발하려면 신화를 공부해야 하며 신화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왜냐하면 신화가 사회, 정치, 경제, 종교, 인간, 결혼, 사랑 등, 우리 삶을 구성하는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통찰을 보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즉, 신화에는 개인이 지닌 완전성과 무한한 힘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는 힘이 있다고 주장한다.



정신분석학의 흐름을 이해할 때 조셉 캠벨의 신화 이론을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은 프로이트와 융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둘은 '무의식'에 관해 결정적인 입장 차이를 보이며 갈라서게 된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성적인 충동으로 주장한 반면, 융은 무의식이 인류 모두가 공유하는 원형적인 어떤 상징으로 이해했다.


융은 인간의 정신이 어느 지역에 살고 있든 서로 통한다고 주장했고, 이후 '인류 정신의 통일성'이라는 주제로 여러 학문적 접근이 이루어진다.


조셉 캠벨은 이러한 융의 관점을 신화 연구에 본격적으로 도입한 대표적인 학자다. 캠벨은 영웅 신화를 주목해서, 영웅신화의 구조가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래서 신화 속  영웅은 개인의 의식을 넘어서 자아의 통합을 이루고자 하는 이들의 모델이 되며, 화는 그런 영적인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라고 제시하고 있다.



영웅 신화를 읽으며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영웅의 모험과 같은 영적인 여정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런 과정 속에 우리는 언어를 뛰어넘은 초월적인 인식에 이를 수 있고, 이를 통해 우리가 가진 개인이 문제들을 뛰어넘고 더 나은, 또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게 캠벨의 이야기다.



◇◇◇



책 후반부에 캠벨은 각 종교의 교리적인 선입견에 얽매이지 말고, 다른 문화와 종교의 신화들을 읽는 게 관점과 생각의 깊이를 넓힐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신학을 전공한 내 입장에서는 내게 익숙한 성서에 담긴 이야기들을 신화적 관점으로 접근해서 해석한 것이 흥미로웠다. 한 번도 안 가본 새로운 나라를 여행하는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영웅의 모험 이야기를 내 삶에 대입해서 나도 어떠한 역경을 이겨내고 새로운 차원의 존재가 된다는 것. 어쩌면 이건 독서와 글쓰기에도 함께 적용되는 포인트가 아닐까. 핵심은 더 나은 존재가 되어가는 것. 두껍고 알쏭달쏭하고 때로 난해한 책이었지만 충분히 시간을 들여 읽어볼 만한 책이었다.



이 책을 통해 '신화'에 발을 디뎠으니 내친김에 조셉 캠벨의 또 다른 대표 저작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도 도전해보련다.

 


책속밑줄



아름다움은, '살아있음'의 환희의 드러남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순간순간의 삶이 그런 체험의 연속이어야 합니다. (410)



모이어스 : 신화를 읽다 보면 문화권도 다르고 시간과 공간도 다른데, 늘 똑같은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이걸 어떻게 보시는지요?


캠벨 : 우리의 정신 안에는 인류의 공통되는 어떤 힘이 있다는 뜻이지요. 그렇지 않고는 그렇게 자세한 데까지 같을 수가 없어요.


모이어스 : 서로 다른 수많은 문화권이 같은 창조 이야기, 같은 처녀 수태 이야기, 죽었다가 부활하는 구세주 이야기를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선생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이런 이야기가 우리의 내부에 들어 있는 것, 우리가 이해하려 하는 것을 반영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캠벨 : 바로 그겁니다. 신화의 이미지는 우리 모두의 영적 잠재력을 반영하고 있어요. 바로 이 신화의 이미지를 알면 우리 내부에 있는 이 잠재력을 촉발할 수 있는 겁니다. (394)



모이어스  : 하지만 사람들이 묻습니다. 신화는 결국 거짓말이 아니냐고요?


캠벨 : 아니에요. 신화는 거짓말이 아니에요. 신화는 시, 신화는 메타포일 뿐이에요. 신화가 궁극적 진리에 버금가는 진리라는 말은 신화를 정말 잘 나타낸 말입니다.


이게 왜 '버금'이냐 하면, 궁극적인 것은 결국 언어로 드러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언어로 드러난 진리 중에는 으뜸이라는 뜻이지요.


신화의 진리는 말씀 너머, 이미지 너머, 불교에서 말하는 전륜의 테 밖에 있어요. 신화는 우리의 마음을 이 테 밖으로 보냅니다.


이 테의 밖에 있는 것은 앎의 대상은 될망정 드러냄의 대상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궁극적 진리에 버금가는 진리인 것이지요.


신화 자체의 신비와 우리 자체의 신비를 알고 체험하면서 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이런 앎과 체험은 우리 삶에 광휘를, 새로운 조화를, 새로운 빛을 더합니다.


신화의 문맥에서 생각하면 우리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눈물과도 화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겉보기에는 부정적인 것 같은 우리 삶의 순간과 삶의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가치를 읽어낼 수 있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 삶의 모험을 진심으로 반길 수 없느냐, 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영웅의 모험, 즉 살아 있음의 모험 말입니다. (303)



살면서도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 신화는 읽어본 적이 없어요. 신화는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그 고통을 직면하고, 이겨내고, 다른 것으로 변용시킬 수 있는가를 가르칩니다. 그러나 고통이 없는 인생, 고통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인생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아요. (296)



고통에서 놓여나고 싶거든 고통이 곧 삶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말고 용감하게 인정하세요. 우리는 오로지 고통을 통해서만 고상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297)



신화는 개인이 지닌 완전성과 무한한 힘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고 그 세계를 날빛 아래로 드러내는 힘이 있어요.

괴물을 죽인다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신화는 우리를 사로잡되, 우리 심층에 있는 것을 거머쥡니다.



Q : 어떻게 하면 우리 안에 있는 괴물을 죽일 수 있습니까? 우리 개인이 반드시 해야 하는, 선생님의 이른바 '드높은 영혼의 모험'이란 무엇입니까?


A : 내가 일반적으로 학생들에게 내리는 처방은 "그대의 천복을 따르라"는 겁니다. 천복을 찾아내되, 천복 따르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만일에, "아니, 내가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게 바로 우리 안에 갇혀있는 용입니다.


"안 돼 나는 작가가 될 수 없을 거야"라든지, "나는 아무개가 하는 일은 도저히 할 수 없을 거야", 이런 다면 이게 바로 우리 안데 갇혀 있는 용입니다. (272)



"천복을 좇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 (227)



그걸 잡으면 무엇이 어떻게 될지는 아는 사람도 없고 가르쳐줄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 바닥으로 그걸 인식할 도리밖에는 없어요. (223)



대학에서 가르칠 때 나는 학생들과 적어도 2주일에 한 번씩 정도는 약 반 시간씩 개인 면담을 하고는 했어요. 가령 학생들과 독서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노라면 학생이 보이는 반응에서 뭔가를 느껴낼 수 있지요.


자기 천복과 관계가 있는 이야기가 나오면 눈빛이 달라지든지 낯빛이 달라지든지 하지요. 삶의 가능성은 바로 여기에서 열립니다.


나는 이런 가능성을 붙잡고 "이 학생은 여기에 매달리게 해주어야겠구나." 이런 결심을 하고는 합니다. (224)



천복거리를 찾는 일은 스스로 갈고닦아야 하는 기술 같은 것이지요.(225)



어떤 학생이 나에게 와서, "제가 이걸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저걸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도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했어요.


"모르겠네. 남들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10년이고, 20년이고 기다릴 수 있겠는가? 아니면 대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자 하는가? 세상이 뭐라고 하건 자네가 정말 좋아하는 것만 붙잡고 살면 행복하겠다 싶거든 그 길로 나가게."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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