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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안 May 01. 2023

읽고 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퇴근하며 아이를 데리고 온다. 저녁을 준비한다. 설거지를 하고 뒷정리를 한다. 아이 숙제를 봐준다. 씻는다. 어느덧 잘 시간. 그렇게 하루가 간다. 어찌 보면 무탈하고 안온한 일상. 하지만 뭔가 스스로 정체되어 있는 느낌은 뭘까. 하루하루가 그저 속절없이 흘러가버리는 듯 해 마음이 헛헛하고 무기력했다.



나무들마다 연둣빛 초록잎이 싱그럽게 자라나는 이 계절처럼, 나도 생기 있고 활력 있게 하루하루를 보냈던 적이 분명 있었는데. 언제였을까?



돌아보니 독서모임에 참여하며 책을 읽고 무언가를 써야 했던 때, 그때가 내면의 에너지가 차올랐던 때였다.



2019년 겨울부터 이듬해 겨울까지, 아내의 권유로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강사님이 정해주신 책에 대한 페이퍼를 쓰고, 모임원들 앞에서 써온 글을 소리 내어  읽는 독서모임에 참여했었다.



처음에는 내 글을 누군가 앞에서 낭독하는 게 어색하고 진땀이 났다. 하지만 모임이 거듭될수록 자기가 쓴 글을 소리 내서 읽는 게 글쓰기가 눈에 뛰게 느는 탁월한 훈련법이라는 걸 알게 됐고 강사님과 모임원들의 따듯한 피드백을 통해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2020년에는 월-금, 주 5일간 독서노트를 써서 네이버 밴드에 올리는 온라인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방식은 간단했다. 지정된 도서를 하루 5쪽이든 20쪽이든 읽고, 인상 깊은 구절과 그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밴드에 올려 인증하는 거였다. 지정된 시간이 지나면 그날 인증은 하지 못한 걸로 기록이 되기에 하루 중 틈틈이 쓸 내용을 떠올리며 시간 안에 독서노트 글을 써서 올리려 애를 썼다.



이런 독서모임에 참여했을 때는 어쨌든 정해진 책이 있고 써야 하는 글이 있었기에, 하루 중 읽고 쓰는 시간을 어떻게든 확보해야만 했다. 이렇게 강제성이 부여된 환경이 오히려 내게 더 활력을 줬다고 해야 할까. 읽고 쓸 수밖에 없는 상황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기에 여전히 분주한 하루 속에서도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거다.



그래서 다시, 읽고 써야만 하는 환경에 나를 가두기 위해 이번엔 '글쓰기 모임'을 찾아내 나를 던져놓았다. 첫 모임 후 한 주가 지난 시점, 역시나 과제가 있으니 쫀쫀한 긴장감이 내안에 베어 있다. 자투리 시간에 책을 읽고 메모를 해둔다. 단호한 빈 화면을 마주하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횟감으로 쓰는 물고기를 운반할 때 천적 물고기를 그 안에 놓아두면 횟감 물고기가 죽지 않고 오히려 싱싱하게 살아있다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찾아보니 이걸 '메기 효과'라고 하기도 하고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는데 어쨌든 결론은 이렇다. 이런 독서모임, 글쓰기 모임이 나를 싱싱하게 살아 있게 한다는 것. 나를 헛헛함과 무기력감에서 벗어나 생동하게 만든다는 것.  



앞으로 12주동안 또 하나의 글감옥에 갇힌 나. 스스로 나를 가뒀지만 이 시간이 나를 더 자유롭게 할 것이 분명하기에 미소를 지으며 나를 수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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