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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안 Aug 07. 2023

시와 나

'시를 쓰는 나' 받아들이기


내 안의 언어가 소멸해가고 있었다. 의미 있는 경험들이 나의 언어로 기록되지 않고 사유되지 않은 채 흘러갔다. 분주함과 피곤함을 이유로 글을 쓰는 일은 계속 밀려갔다. 그렇게 한 주, 두 주 업무용 글이 아닌 나만의 글을 쓰지 못하는 나날들이 쌓여갔다. 글을 쓰는 일은 어느덧 아득한 일이 되어버렸다.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면, 글을 쓰지 마라.’ 릴케는 말했다. 꽤나 강한 외침이다. 한 때 절박하게 글쓰기가 좋았고, 마음을 툭 건드리는 글들을 쓰고 싶었다. 그런 글들을 모아 책으로도 내고 싶은 열망도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글을 분석하고 참고하며 글쓰기에 재미를 붙였다. 그러다 점점 내 글이 고만고만하다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 식상해지기 시작했다.



삶 속에 얻는 다양한 경험들을 관찰하고 의미를 추려내고 문장으로 풀어냈지만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글을 계속 써봤자, 이 글들이 책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들었고 스스로 그렇지 않겠다 라고 결론을 내렸다. 나만의 콘텐츠가 없는 게 문제였다.



이렇게 글쓰기 침체기를 겪던 중 시집을 손에 들었다. 자투리 시간에 시처럼 읽기 좋은 게 없었다. 아무 데나 펼쳐서 읽고, 걸어가면서 그 의미를 생각하고,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불을 기다리며 시를 읽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 업무를 하기 전에도 잠깐씩 시를 읽고 좋은 문장은 필사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추스를 때, 혹은 어떤 깨달음의 순간을 좀 더 명징하게 간직하고 싶을 때 나는 종종 시를 썼다. 단어를 조심스레 선별하고 문장을 배열해서 하나의 시를 완성했을 때 대나무처럼 생각의 마디가 생기고 매듭이 지어졌다.



산만해진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다시금 침묵과 고요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마음속 부산물이 어느정도 내려앉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침묵 속으로 나를 밀어 넣으니 가슴이 갑갑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잠잠해진 마음속에 나는 문장을 지어낼 수 있었다.



침묵의

바다 속으로

나를 밀어 넣는다



사방

가득 메운

침묵 속에

괴로워하는 나



요동치는

산만함과

부산함을

이기지 못하고

익사할 때 즈음



새로운

숨통이

트이고



나는

한 마리

물고기 되어



유유히

자유롭게



침묵의

바다 속을

그렇게


<침묵의 바다> _ 이레



시를 쓰는 건 낯간지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를 쓸 때 내 속에 있는 언어들이 꿈틀거리며 생동했고, 그 언어들을 하나씩 만지작거리며 쌓아갈 때 그윽한 충만함이 느껴졌다. 천천히 시를 읽고 손글씨로 옮겨 적는 일은 머리와 마음을 유연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때로 유명한 시의 한 구절을 각색해서 시를 쓰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유난히 뜨겁고 습한 어느 여름날,  로버트 프로스트가 쓴 시의 한 구절, ‘비가 바람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밀어붙여 나는 퍼부을 테니’가 떠올랐고 이를 바탕으로 이런 시를 써보기도 했다.    



여름이

말했습니다



구름아

너는 긴 장마와

폭우를 쏟아부어줘



태양아

너는 찜통 더위와

불볕 햇빛을 쏘아줘



그렇지만

나는 압니다



더위와

장마가

절정에

달할 때



가을은

성큼

다가와

있다는 것을


<여름이 말했습니다> _ 이레 



‘시를 쓰는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니 일상에서 새로운 활력을 찾은 것 같았다. 또한 조심스레 꺼내놓은 시에 몇몇 사람들이 반응해 주는 것도 작은 뿌듯함을 느끼게 했다.


 

시를 쓴다는 건 자기 만의 시선과 언어를 가지고 단어와 문장을 직조하고, 삶의 여러 모습들을 압축해서 표현하는 일이다. 섬세하고 깊은 관찰력과 언어를 엮는 기술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시를 쓰는 건 몇 천자 이상의 긴 글을 쓰는 것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시를 써보려 한다. 시를 쓰며, 삶을 응시하는 나만의 관점과 언어를 만들어내다 보면, 어느덧 나만의 콘텐츠를 발견해 내리란 믿음을 가지고.



시의 세계로, 시의 언어 속으로 나를 계속 던져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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