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복귀 후유증
휴가 복귀 후 이토록 출근하기가 싫었던 적이 있었을까. '10분만 더 누워 있자.' 알람이 울리고, '5분만 더 누워있자' 그렇게 최대한 누워서 웅크려 있고 싶었다.
특정한 날이 무한 반복된다는 설정의 영화 <사랑의 블랙홀>처럼, 나는 간절히 휴가 첫날로 돌아가서 휴가 마지막 날까지 몇일의 이 날들이 계속 반복되기를 바란다. 다시 현실 세계,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너무도 싫다. '휴가 1일차는 뭐 했더라? 2일차는? 그래 이거 했었지. 3일차는 여기 가서 시간을 보냈지.' 이렇게 내 영혼은 유체이탈해서 추억 속을 거닐었다.
알차고 편안하고 반짝이는 시간들이었다. 모처럼 아내와 아이들과 같이 있는 시간을 보냈고, 잠도 푹 자고, 맛있는 것도 먹었다. 계곡과 바다에 가서 놀았고 의미 있는 대화와 소소한 만남들도 있었다. 더할 나위 없는 휴가였다.
그럼에도 복귀 후 첫 출근시간이 다가올수록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마음을 옥죄는 것 같았다. '아, 가기 싫다! 너무 나 출근하기 싫다!'
그러다 불현듯 스치는 한줄기의 생각. '또 다른 행복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문지방을 넘어야 한다. 새로운 어떤 즐거움과 행복의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행복의 또 다른 문을 열자'는 깨달음이 휴가의 추억 속에서 무한 루프로 서성이고 있던 나를 현실로 데리고 왔다. 이불을 박차고 나가, 샤워기를 들고 머리를 감았다.
뭔가 또 다른 소소한 기쁨의 일들이 기다리고 있겠지. 그렇게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일상과 현실의 바다 속으로 풍덩 들어갔다. 휴가 모드에서 일상 모드로 가까스로 전환할 수 있었다.
"잘 놀고 흐뭇했어도 일이 지나고 보면 문득 슬프고 쓸쓸한 마음이 든다." _ 홍세태, <유하집>
아무리 즐겁고 충만했던 시간들도 결국 손에 쥔 모래가 스르르 빠져나가듯이 흘러가버린다. 어떻게든 그 시간을 천천히 보내고, 그 속에 머물고, 선명하게 기억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써도 무심히 지나가버린다.
어차피 잡을 수 없다면 흘려보내고, 새로 다가올 일들을 기대하는 수밖에. 또 다른 소소한 행복의 조각들을 기대하며 문지방을 넘고, 오늘이라는 문을 열어 제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