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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안 Sep 29. 2021

글 잘 쓰는 법, 그딴 건 없지만

지금껏 읽은 작법서와 결이 좀 달랐던


한밤중에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허리 통증을 견뎌가며 키보드를 두드려 글을 쓰고, 자신이 쓴 글에 스스로 조금 웃는 것. 그것이 글 쓰는 사람의 생활이다.


글 잘 쓰는 법, 그딴 건 없지만 94p



지금껏 읽은 글쓰기 관련 책 중 살짝 결이 다른 느낌의 책이다. 어찌 보면 처음으로 일본 사람이 쓴 작법서를 읽은 셈인데 작가가 일본인이어서 라기보다는 이 사람 자체가 조금 특이한 것 같다.



약간 냉소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느낌이 있다. 책 제목 자체가 그렇지 않나. <글 잘 쓰는 법, 그딴 건 없지만>. 이 책의 오리지널 원제는 일본어로 되어 있어서 정확한 제목을 알 수 없지만 이 책의 한국어 제목은 눈길을 끌게 잘 지은 듯하다.



글 잘 쓰는 법. 책의 내용을 빌려 좀 더 풀어쓰면,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고, 웹이나 SNS에서 인기를 끌고, 효과적으로 내용을 전달하고, 무척이나 재미있고, 알기 쉬운 글을 간단하게 쓰는 방법. 그것을 짧게 말하면...



그딴 건 없다는 게 저자의 마지막 주장이다. '아니, 그러면 이 책을 대체 왜 봐야 하는 거야?' - 라고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 책은 사실 '작법서' 라기보다는 글쓰기에 대한 태도를 주로 다룬다. 그 태도도 지금껏 봐왔던 글에 대한 다른 책들의 태도와는 좀 다른데, 예를 들면 이렇다.



세상에서 글 쓰는 일만큼 귀찮은 일이 과연 있을까 "글 쓰는 것이 좋다"는 사람을 잘 이해할 수 없다.


내게는 세상에서 제일 싫은 일이기 때문이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카레라이스를 먹는 것이며, 거기서부터 순위를 매기면 글쓰기는 대략 1863위 정도 된다.


글 잘 쓰는 법, 그딴 건 없지만 91p




타깃 따위는 없어도 된다. 그 글을 처음으로 읽는 사람은 분명히 자신이다. 그런 나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다면 충분하다. 내가 읽어서 재미없다면 쓰는 것 자체가 헛된 일이다.


글 잘 쓰는 법, 그딴 건 없지만 87p



작법서에는 그래도 글쓰기에 대한 예찬론이 어느 정도는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 다나카 히루노부는 '글쓰기란 일단 고된 일이며 특별히 새로운 견해도, 의문도 없고 독자로 만족한다면 그냥 독자로 남자'고 쿨하게 말해버린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너무 영양가 없는 책으로 보일 것 같은데 그렇다고 너무 실없는 책도 아니다. 군데군데 고개를 끄덕이며 따로 필사해 보관하고 싶은 부분들이 있다.



내가 에세이(수필)를 정의하자면 이렇다. 사상과 심상이 교차하는 곳에 생긴 문장.


사상은 결국 자신이 보고 들은 것, 알게 된 것이다. 세상의 모든 물체, 사건, 사람은 '사상'이다. 그 사상을 접하고 마음이 움직여서 쓰고 싶은 기분이 생겨나는 그것이 '심상'이다. 이 두 가지가 갖춰졌을 때 비로소 에세이가 써진다.  


글 잘 쓰는 법, 그딴 건 없지만 47p



가볍게 읽을 <작법서>로 추천한다. 그런데 가볍게 읽다가도 어느 한 부분에는 머물러서 가만히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이 사람 특유의 약간은 뻔뻔하고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있다. 저자가 책 전반에 걸쳐 계속 강조하는 건 이거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써라. 내가 쓴 글을 나 스스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써야 한다. 내가 읽어서 재미없다면 쓰는 것 자체가 헛된 일이다"



즉 내가 읽고 싶어서, 나를 위해서 쓴다는 게 글쓰기의 기본이라는 거다.



그리 두껍지 않고 가벼운 책이라 공원 벤치나 카페에서 읽기 괜찮다. 글쓰기에 왠지 슬럼프가 찾아온 듯하고 귀찮아진다면 역시 한 번쯤 읽어볼 것을 권한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글을 쓰는 사람은 인기가 없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아무하고도 만나지 않는다. 담소를 나누며 글을 쓰는 사람은 없다. '이 얼마나 음침한 음지의 직업인가' 하고 스스로도 생각한다.


글을 쓰는 것, 그리고 읽는 것은 서로의 고독을 이해하고,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세상에 대한 존경과 애정과 공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글 잘 쓰는 법, 그딴 건 없지만 2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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