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르던 세상
보통의 학기가 9월에 시작하는 학교와 달리 남편이 속한 프로그램은 6월부터 시작하는 코스라 8월말 기숙사 입주 때까지 단기 숙소를 구해야 했다. 급하게 숙소를 구해야 했던 터라 우리는 한국인 대학생이 살다가 사정이 생겨 비워야 하는 아파트에 3개월간 단기 서블렛(Sublet / 세입자가 또 세입자를 구하는 것, 미국에선 흔하다)에 들어갔다. 찰스강이 내려다보이는 월 3400불짜리라길래 우와..........라는 탄성이 나올줄 알았건만 다른 의미에서의 탄식이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저 어마어마한 임대료 중 3000불은 찰스강뷰인 것만 같은 연식 100년도 더되보이는 아파트였던 거다.
현관문은 아주 종잇장처럼 얇디 얇은, 방문으로도 매우 손색이 있는 나무문이었고 열쇠는 누구라도 맘만 먹으면 복사 가능해보이는 작은 키쪼가리였다. 집 컨디션으로 따지자면 올 카펫 바닥에 오뎅반찬 한 조각이라도 흘리면 어디선가 득달같이 개미들이 줄지어 오뎅 위로 올라타는 개미지옥이었으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집 안에 세탁기가 없었다. 곧 알았다. 세탁을 하려면 지하 1층 공용세탁실로 가야 한다는 것을. 이런 곳이 월 400만원이라니...기절할 노릇이었다.
두 눈만 꿈뻑꿈뻑
제일 중요한건.....조명이 없었다. 그렇다. 미국에 도착한 첫 날 우리 네 명은 어둠 속에서 휴대폰 조명에 의지해 두 눈만 꿈뻑거려야 했던 것이다. 미국 집은 벽에 붙어있는 조명이 거의 없다. 방마다 형광등이 내장돼 있는 한국과는 달리 여기는 지은지 얼마 안된 아파트들도 거실과 부엌 정도 최소한의 내장조명만 있을 뿐 각 방의 조명은 내돈주고 다 사야한다. 이케아에 왜그렇게 조명이 많은가 했더니 이런 이유가 있었던 거다. 텅빈 미국집에 들어올 때 필수품은 다름 아닌 조명이었다!! 내가 그토록 고심하며 이민가방 3개와 캐리어 4개에 꾹꾹 눌러담아온 짐의 절반은 쓰레기였다는걸 깨닫는데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미국 오시는 분들, 절대 옷은 싸오지 마십시다! ㅎ
미국에 와서 놀란건 이뿐만이 아니다. 아무도 분리수거를 제대로 안한다. 한국에선 분리수거로 인해 쓰레기대란까지 일어났었는데 이놈의 나라는 피자박스와 음식물쓰레기를 아주 큰 쓰레기통에 그냥 죄다 쳐박는 구조다. 파티가 일상화된 나라라 일회용품은 또 오지게 쓴다. 얘네들이 쓰레기 버리는거 보면 한국처럼 개미만한 나라가 아무리 재활용해봤자 지구는 오염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아주아주 빠른 속도로 적응하고 있다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중에서도 제일 쓸모없는건 바로 내가 지난 30여년간 배워온 영어였다. 실생활 영어와 내 머릿속 영어의 괴리는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더 컸다. 나는 그래도 내가 영어를 꽤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거슨 나의 굉장한 착각이었다. 매순간이 듣기평가다. 알던 것도 안들리고 필요한건 더 안들린다. 심지어 자판기에 붙어있는 문장도 해석이 안됐다. 1 bills가 1달러만 가능하다는 뜻이란걸 첨 알았다. 훌쩍. 나의 영어 대굴욕기는 언젠가 또 상세히 적을 날이 있을 것이다. 눈물 없인 못듣는다.
의식주 중 제일은 밥밥밥
도착하자마자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먹는 거였다. 남편과 나만 있음 대충 사다 먹등가 때우면 되는데 이 제비같은 식솔들이 딸려있는 터라 그럴 수도 없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여기 식당밥들이 입맛에 맞지 않고 무엇보다 더럽게 비쌌다. 짜장면 한 그릇에 3만원 정도 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라도 갈수록 밥을 해먹어야 속이 시원해지는 환경이었다. 내도록 말하지만 나의 소중한 이민가방 3개에 부엌살림이라곤 달랑 냄비 2개와 프라이팬 1개, 그릇과 컵, 수저, 국자, 뒤집개가 전부였는데 말이다.
며칠간은 말그대로 김밥(김과 밥), 계란밥으로 돌려막기 하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서 우버를 불러타고 각종 양념부터 쌀, 고기까지 무슨 전쟁난 사람처럼 카트를 채워 두세번 장을 보니 그나마 냉장고가 채워졌다. 간장, 소금부터 참깨까지랄까...미국에서의 장보기는 H마트와 코스트코, 로컬마켓까지 세군데를 순회해야 완벽해진단걸 알았다. 마켓컬리와 쿠팡맨 따위 이곳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끼니는 내 기분 따위와 상관없이 매일같이 돌아온다. 내일 기사 뭐쓸까? 이 고민에 쓸 게 없으면 밤잠을 뒤척일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던 것과 차원이 다른 스트레스다. 아침 뭐먹지? 점심 뭐먹지? 저녁은? 우리는 매일같이 이 고민을 한 누군가의 보살핌 덕에 이 자리에 있는 거였다. 요리는 숭고한 작업이었던 것이다.
암튼 여기까지가 미국에 도착해 일주일간의 상황이다. 문제는 첨 도착하고서 당장은 모든게 시험이라는 거다. 우버 앱 까는거부터 음식주문, 주차미터기에 동전넣기, 장보기 등등 모든게 다 서툴다. 심지어 신호등 건너는 것도 버튼을 눌러야 파란불로 바뀌어 한참동안 멍청이처럼 서있기도 했다. 이런 어리바리한 바보 멍청이같은 상황에 애둘이 딸려 있다고 생각해보라. 정말 대환장 미칠노릇이다.
결국 난 이 생활 일주일만에 큰 아이라도 학교에 집어넣기로 맘을 먹었다. 6월 중순 학년이 끝나기까지 단 3주밖에 안남아있었지만 말이다. 가족 단위로 미국에 혹시 오려는 생각이 있거든 엄마나 아빠 누구라도 하나 먼저 나가서 이 모든 것들을 세팅한 후에 나머지 가족들이 들어오는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아님 현지에 누가 있으면 무릎 꿇고라도 도움을 청하는 것도 방법이다. ㅋㅋ 정말이지 맨땅으로 애둘 델꼬 듣도 보도 못한 곳에 정착하기란 수습기자가 대통령이랑 단독인터뷰하는것보다 한 만배는 더 힘든 일이지 싶다.
이렇게 2019년 6월은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