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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쏭쏭계란탁 Nov 01. 2020

삼십대 후반. 무작정 떠나다.

내려놓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2019년 5월 17일. 그 날이 오고야 말았다.

시작은 아주 작은 남편과의 대화였다.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 맑은 공기에서 마음껏 애들 좀 뛰놀게 하고 싶다."

"그러게...다인이 이제 곧 초딩인데 이 대치동 바닥에서 결국 학원 뺑뺑이 시켜야겠지?"


더 늦기 전에 방법을 좀 찾아볼까?


맞벌이였으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해외근무할 가능성은 둘 다 희박했다. 회사에 특파원 제도가 있었지만 전사에서 단 1명만이 갈 수 있는 박터지는 싸움이었고 연공서열로 따지자면 내 연차가 올 시기는 저~~멀리 있었다. 결국 우리의 미국행은 딱히 답이 보이지 않는 꿈 같은 거였다. 그렇게 난 일상 속으로 다시 스며들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남편이 육아휴직을 내버린거다. MBA(경영대학원) 공부를 하겠다고 말이다. 다른 모든 한국회사가 그렇듯 남편의 회사도 '남자의 육아휴직=승진안녕~' 구조였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저 작은 바람을 위한 진짜 꿈을 꾸었고 그렇게 1년간 학원과 독서실, 어린이집을 오가며 삼십대 후반에 녹슬어버린 머리를 부여잡고 공부를 해나갔다.


2009년 아무 대책없이 은행에 사표를 던졌을 때 모두가 미쳤다 했지만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흔들림 없는 남편의 눈빛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외벌이를 자처했다. 우리의 결정 뒤에선 '누가 요즘 MBA를 가니~~'라고 수군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뭐 어쩌겠는가 우리가 하겠다는데.


그렇게 1년 후. 하나님은 길을 열어주셨고 잠시 내가 속한 세상을 떠나게 됐다. 미국에 가면 좋겠다 좋겠다 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내 세계에서 누렸던 모든 일들을 내려놓는 건 쉽지 않았다. 특히 기자로서의 삶은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도 아주 어렵게 얻은, 내 자아를 떠받치고 있는 사랑하는 일이었기에 이걸 버리고 엄마로서, 아내로서만 살아가야 하는 삶이 그닥 달갑지만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싫었다. 두려웠다. 쓸모 없는 사람이 되버릴까봐. 소중했던 취재원들과의 만남, 좋아하는 선후배와 동료들, 늘 즐거웠던 술자리, ON AIR에 불이 들어올때마다 심장이 쫄깃해졌던 방송. 이것들이 내 인생에서 빠진다고? 말도 안돼.

하지만 상념에 빠질 새도 없이 인수인계와 짐싸기, 코스트코 카드 만들기, 애들 병원서류 떼기 등등 착착 출국 준비는 진행됐고 정신이 들었을 때쯤 이미 내 몸은 비행기 안이었다.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혈뇨와 방광염약만이 내 손에 들려 있었을 뿐.


남편과의 대화 1년 후 우리의 꿈은 현실이 됐다.

그렇게 미국 메사추세츠주 캠브릿지에 발을 디뎠다. 우리 넷이. 회사에서 서포트해주는 주재원이나 특파원은 이주비용이나 체제비가 나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우리처럼 모든걸 셀프로 해결해야 하는 이들은 최대한 짐을 줄여야 한다. 달랑 이민가방 3개와 캐리어 4개, 유모차와 카시트가 전부였다. 아차차, 내 한몸 건사하기도 버거운 이억만리 타국에서 좌충우돌 사고뭉치 6살, 2살 남매도 추가요~


그 후 1년 6개월. 지난 시간들을 정리하며 이 브런치북을 발간한다. 이 글은 30대 후반 애 둘 딸린 아줌마의 처절한 미국 생존기이자 미국의 교육, 육아, 문화, 생활 등을 맛보기로 둘러본 기자로서의 기록이다. 또한 47개국의 아줌마들과 뒤섞이면서 느낀 대한민국 예찬일기요, 미국이면 다 좋다는 '미제환상'에 대한 나만의 해석문이기도 하다.   


부디 이 글이 누군가에겐 웃음을 주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새로운 깨달음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결국 나의 최종 꿈인 '말과 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길 바라며 글을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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