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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쏭쏭계란탁 Nov 01. 2020

왓? 어린이집이 월 300이라고?

픽드랍과 도시락은 덤

나는 그동안 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게 있었다. 미제라면 다 좋아보이는 그런거 말이다. 하지만 막상 미국에서 살아보니 적어도 생활적인 면에서 이 나라가 선진국이란 느낌을 단 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


장염엔 유산균이지!

가장 최악은 역시 의료서비스다. 보험에 가입했어도 의사얼굴 보기가 매우 어렵다. 나흘째 장염끼로 설사를 계속하는 딸의 진료예약을 잡기 위해 간 병원서는 의사는 꼬빼기도 안비치고 간호사가 나와 유산균을 한봉지 주며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복통이 있는거 아니면 오지마. 설사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잘가”란다. 7월초에 잡은 영유아검진 예약은 젤 빠른 날이 9월 9일이다. 기가 찬다. 물론 우리나라 부모들이 툭하면 병원가서 약받아오는 과잉진료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이곳 의료체계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머니일 뿐이란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보험이 없어 치료를 못받아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는 미국에선 더이상 뉴스가 아니다.


나의 주요 관심사인 보육체계는 또 어떤가. 자칭 육아전문기자인 내가 육아선진국이라는 북유럽 국가들과 캐나다 퀘벡 등 복지국가들만 다녀서 그런지 몰라도 미국 제도를 보고 난 후 대충격을 받았다. 이게 선진국이라고라고라고라고라?? 캠브릿지가 보스턴 중에서도 살인적인 물가인 점을 감안한다 쳐도 하루 6시간 주 3회 맡기는 비용이 월 1700불, 하루 9시간 주5회는 3030불은 말이 안되는 금액이다. 이 돈을 받아쳐먹고도 점심은 도시락을 싸와야 한단다. 소방규정상 전자렌지도 못쓰니 보온통에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그러고도 그돈을 받아?? 이런 망할. 아이 둘 다 한국에서는 끽해야 월 오만원 드는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밥과 간식까지 먹여왔던 나다. 영어유치원 보내기 싫어 미국에 왔는데 데이케어비가 한국에서 영유보내는 비용보다 더 비싼 아이러니라니. 헛웃음이 나온다.

매일같이 2개의 도시락을 싸야 한다.


온갖 상담을 다니면서 한국 어린이집은 다 무상보육이라고 하면 다들 기절초풍을 한다. 내가 뻥친다고 각하는 눈빛도 읽었다. 그나마 학교 내 어린이집이 월 2000불 정도로 시세의 절반 가격인데 거기는 대기줄이 말도 안되게 길다. 남편이 졸업할 때쯤 TO가 난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담당자를 찾아가 내가 이 분야를 취재한 기자라고 밝히고 상황 설명을 좀 해주면서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보육 시스템을 나는 정말 믿을 수 없다고 토로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Shame on me였다. 창피하지만 이게 미국의 현실이란다.


의료와 보육은 셀프에요~


이게 다가 아니다. 내가 1년간 육아휴직을 쓰고 이곳에 왔다고 얘기하면 여기 사람들 열에 여덟은 놀라 자빠진다. 육아휴직이라는 것조차 생소한 나라가 미국이다. 아주 복지가 좋은 회사에서도 4개월 정도 육아휴직을 해주면 양반이다. 나라에서 급여를 주는 육아휴직 따위는 없다. 필수인 의료보험조차 저리 개판인데 육아휴직은 언감생심이지. 오죽하면 그 유명한 배우 앤 헤서웨이가 UN연설에 등장해 육아휴직 좀 만들라고 외쳤겠나 싶다. 머니에서 시작해 머니에서 끝나는 자본주의의 끝판왕 미국에서는 의료나 보육정책은 그저 개인의 영역일 뿐이다.

세계 여성의 날 맞이 UN서 연설한 앤 헤서웨이(사진: UN홈페이지)


신기한건 많은 엄마들이 일을 하지만 둘이 벌면 한쪽 월급은 전부 데이케어에 나가도 그냥 당연한 듯 이 시스템에 적응하고 있다는 거다. 흠.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사람이 별로 귀하지(?) 않아서일수도. 인구 천만인 스웨덴이나 550만인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사람 한명이 너무나 소중하니 제발 낳기만 해라 나라가 키워줄게지만 인구 3억이 넘어가는 미국은 뭐..그냥 너 알아서 해..이런게 아닐까.


미국에 오래 살고 있는 친구에게 물었더니 더 재밌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건 바로 미국인들이 무지해서란다. 자기들이 세계 최강이니까 이런 것도 지네가 제일 좋은 걸꺼라고 생각하고 그냥 받아들이는? 뭐 그런 걸수도 있다고...말도 안돼. 지금까지 미국은 내게 천박한 자본주의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암튼 결론은 월 3000짜리 풀타임은 아니더라도 하루 단 두시간이라도 난 아이를 데이케어에 넣기로 결정했다는 거다. 나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아이를 처음 데이케어에 맡기고 나온 날의 나. 이 사진은 내 인생사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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