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이 아니라 인종천장
보스턴에 온 지 두달이 다되어간다. 남편의 여름학기는 마치 수습기자의 마와리교육과 비슷하다. 언론사들이 인간개조를 시킨다는 거창한 목표를 지닌 채 수습기자들을 경찰서에서 뺑뺑이 돌리는 것처럼 MIT Sloan Fellow 비지니스스쿨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과제와 시험 스케쥴을 짜놨다. 지겨운 회사는 잠시 접고 대자연 속에서 가족들이랑 같이 평화롭게 살아볼까나 했던 최소 직장경력 10년차 이상의 늙은 학생들은 상상도 못한 학사일정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때문에 이집에서 남편의 존재감은 하숙생 정도다.
아침 7시에 가방메고 나가 저녁먹으러 잠깐 왔다 다시 학교에 가서 자정이 넘어 들어오길 일쑤다. 이말인즉슨, 말도 잘 안 통하는 이억만리 타국에서 여름방학동안 애 둘을 끼고 abcd부터 헤쳐나가야 하는게 나의 미션인 것이다. 신호등조차 생소한 이곳에서 나 혼자 미터와 킬로미터가 아닌 피트와 마일로 가득한 네비를 의지해 레고랜드에 가서 센티미터가 아닌 아닌 피트와 인치로 애들 키를 확인해 놀이기구에 올라타는 기분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주차타워를 들어갔다 나오면서 신용카드를 이리 넣어보고 저리 넣어보고 결국 결제를 해냈어!!를 외치는 나의 모습이 참으로 안습이다.
아시안이라 서러워?!
미국생활 두달째인 내가 최근 새롭게 알게된 이슈는 바로 ‘인종’이다. 한국이 워낙에 단일민족국가다보니 여태껏 인종이란 주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여긴 아이들 썸머캠프 신청서에나 데이케어센터 입학서류에도 가장 초반에 물어보는 질문이 바로 “너는 어떤 인종이니?”다. Asian을 체크하면서 묘하게 느껴지는 열등감? 같은게 있다. 왜일까. 한번은 남수 데이케어 선생님이 동남아쪽 분인데 초반에 나보고 한국에 대해 엄청 물어보더니 내 손을 덥썩 잡고는 “얘, 나랑 나랑은 같은 소수민족이야. 다양성이 중요해. 그치?”라고 되물었다. 마치 우리끼리 힘을 합쳐 똘똘 뭉쳐야 한다는듯.
어떤 민족이 우월하다는 식의 편견은 아이들에게 가르치지도 나 본인도 인정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떤 바이어스도 없는 남다인이 “반에 예쁜애들이 딱 두명이 있어. 매그널리아랑 에스트라야. 난 걔네랑만 친해지고 싶고 얼굴 까만 애들은 싫어”라고 말했을 땐 좀 충격이었다. 딸이 언급한 두 명은 반에서 딱 둘인 백인이었다. 이곳의 뿌리깊은 흑백갈등은 내가 겪어온 한일관계 그 이상이다. 겉으론 아무도 티내지 않지만 흑인들에게는 온몸으로 느껴지는 피해의식 같은게 있었고 백인들에게는 알 수 없는 당당함, 아시안에게는 이도저도 아니지만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는 처절함이 느껴졌다. 물론 나만의 생각일 수도.
어쨌든 이곳에서 난 주가 아닌 객이다. 메인이 아닌 주변, 주인이 아닌 그저 이방인일 뿐이다. 이 느낌은 지금까지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거다. 태생이 서자인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바꾸고 싶지만 내 힘으론 절대 바꿀 수 없는 그 어떤 강력한 힘 같은거 말이다.
그래서인지 더 같은 인종, 민족끼리 뭉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외국 나오면 왜그렇게 한국을 더 그리워하고 찾는걸까 궁금했는데 이방인의 삶 속에 있는 외로움 때문이었다. 한인교회에 가면 미국에 아주 오래 산 사람들일수록 더 한국적이다. 우리 뿐만이 아니다. 브룩라인이라는 가까운 타운에는 일본인 커뮤니티가 크게 형성돼있고 남미 사람들도 나름의 마을을 형성해 자기들끼리 더 뭉친다.
다국적 기업에 다니는 나랑 비슷한 또래의 중국인 친구가 해준 얘기다. 회사에서 인종차별을 느껴본 적은 거의 없고 실제 아시안도 흑인도 엄청 많아 일상에서 아시안이라 불편한 점은 거의 없다. 하지만 임원급의 의사결정권자 라인에는 백인이 아닌 사람이 아예 없고 여자는 더더욱 없다. 이게 팩트다.
유리천장이 아닌 인종천장. 난 여자니까 인종+유리천장이겠지. 보이진 않지만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이 곳에서 뿌리 내리고 사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쉽지 않겠구나. 미국으로 이민간다는 사람들이 점점 더 안 부러워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