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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쏭쏭계란탁 Oct 01. 2020

사과하지 않는 미국인들

서비스마인드가 뭐라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1년 이상 타지생활을 해본  없는 내가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때에 미국이란 곳에 발을 딛고 받았던 느낌을 단 한 줄로 표현한다면,


뭐...이딴 나라가 다있지?


그도 그럴게 뭐 하나 처리하려고 전화하면 담당자와 연결이 되는데까지 반나절이 걸리고, 그마저도 그 날 안에 처리가 되면 다행이었다. 쓰레기 수거는 말이 재활용이지 음식불부터 패트병까지 싸그리 다 쓰레기통에 털어넣는 무질서의 극치였고 아이 어린이집은 매일 가는 종일반이 월 3000불이 넘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나라였다. (그마저도 도시락은 집에서 싸가야한다. 물론 지역마다 편차가 크다. 내가 있던 보스턴 캠브릿지는 가히 살인적인 물가였다)

둘째가 다녔던 데이케어(어린이집). ABC도 모르는 애를 미국까지 와서 영어유치원보다 더 비싼 돈을 내고서야 보낼 수 있었다.


아니.. 이런데가 선진국이라고? 세계 최강대국이 여기라고? 정말 수없이 되뇌인 질문이다. 클릭 몇 번이면 일사천리로 행정업무를 볼 수 있고, 어딜가나 질서있는 재활용품 수거에 무료로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국공립어린이집이 널려있는 내 나라 대한민국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절대! 네버! 죽어도! 사과하지 않는 서비스 마인드였다. 역대급 에피소드는 미국 아동의류 브랜드중 나름 고퀄의 H브랜드와의 사건이다 ㅋ아이가 입을 레깅스를 주문하고는 미국의 레깅스는 어떻게 생겼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포장지를 뜯는 순간 레깅스 양쪽의 바지 길이가 다른걸 발견했다. 아니 무슨 수작업도 아니고 공장에서 찍어내는 기성제품이 뭐 튿어지거나 마감이 이상한 것도 아닌 양쪽의 바지길이가 다른게 말이 되나?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번도 겪지 못한 일이라 실소가 나왔다.

양쪽 길이가 달랐던 문제의 레깅스.

근데 또 하필 이 사이트가 온라인 채팅이 안되서 토종한국인들에겐 최고난이도의 영어회화 수단인 전화로 컴플레인을 해야만 했다. 젠장...떨리는 손길로 조심스레 번호를 하나씩 누르고 간신히 직원과 연결이 된 후 "너 그거 알아? 내가 바지를 받았는데 양쪽 길이가 달라!!"라고 연습했던대로 또박또박 내뱉었다. "아이고, 고객님, 불편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라고 시작하는 반응을 예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게 왠걸? 담당자는 무심한 말투로 "그래? 바지길이가 얼마나 다른데?"라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을 내놨다. 거기서부터 또 센티미터와 인치로 실갱이를 하다(말도 안되는 이 단위(Unit)와의 싸움이 미국생활의 일부분이 될 것이라곤 그 땐 몰랐다) 결국 환불해주기로 하고 대화는 끝났다. 대화가 끝날 때까지 나는 고객센터 직원으로부터 단 한번도 미안하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마트를 가면 계산오류를 심심찮게 겪는다. 한국 마트에서는 사실 나중엔 영수증을 따로 체크하지 않을 정도로 계산 실수같은건 드물었는데 여긴 영수증을 확인할 때마다 계산오류가 있는 느낌이었다. 계산 속도로 너무너무 느린데 틀리기까지 하는데다 더 대박인건 오류를 잡아내도 "어? 니가 맞다"하고 정정해주곤 땡이다. 호텔에서 1박이 더 계산돼있는걸 잡아냈을 때도, 비행기삯이 당초 계약사항과 다른걸 지적했을 때도 그저 "You're Correct!" 라고만 할 뿐이었다.


왜 고객센터 직원이라고 꼭 사과를 해야해?


이쯤되니 오기가 생겼다. 주변 미국인들과 이 나라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꼬치꼬치 그 이유를 캐묻었더니 예상 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왜 고객센터 직원이 자기가 한 잘못도 아닌데 너한테 사과부터 해야해?"라는 거다. "아니, 고객센터 직원은 어쨌든 회사를 대표해 고객과 접촉하는 사람이니깐 당연하지!!"라는 내 반응에 미국은 그런 문화가 아니란다. 즉, 회사는 회사, 직원은 직원일 뿐인 것이다. 또 하나, 일반 사회에서도 소송이 아주 자연스럽기 때문에 "Sorry"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걸로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단다. 그 때문에라도 아주 어릴 때부터 진심으로 잘못한 행동을 한게 아니면 사과부터 할 필요는 없다고 배운단다.


뭔가 쿨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고객센터 직원이라면 응당 민원인인 내게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사과부터 해야한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런게 타성에 젖는다는걸까. 이래서 사람은 주기적으로 환경을 바꿔줘야 더 시야가 넓어지겠구나 싶었다.


거짓말 하지 않는 사람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여전히 내 기준에서 미국인들은 사과에 인색하다. 헌데 사과하지 않는 미국의 반대편에는 아묻따 환불해주는 미국이란 나라도 있었다. 레깅스 사건의 그 레깅스 역시 물건을 다시 보내달라는 말 한마디 없이 환불부터 해줬다. 우리같으면 물건을 받아서 하자를 확인하고 나서야 환불처리가 될텐데 말이다. 아마존은 내가 박스에 돌맹이를 넣었을지도 모르는데 일단 환불신청한 물건이 UPS를 통해 배송이 시작되기만 하면 돈부터 들어온다. 매트리스를 사서 쓰다 맘에 안들면 1년이 돼도 환불해주고, 일반 매장들도 기본 1달에서 6개월까지 모든 물건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환불해준다. 아마 이런 정책을 펴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거다. 환불 안해준다고 고객이랑 실갱이하는 직원들의 인건비가 더 비쌀 수도 있고... 근데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느낀 바로는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솔직하다. 그리고 믿는다. 물건이 문제가 있으니 환불을 하는 거라고 말이다.


한국인들이 주재원 등으로 많이 거주하는 일부지역의 이케아에서는 환불기간 1년 정책을 이용한 지나치게 많은 환불요청 때문에 아예 정책을 중단한 지역도 있단다. (나도 여기서 자유로울 순 없다;;)이쯤되니 이케아의 공짜연필이나 코스트코의 공짜 다진양파가 한국에서만 사라진 것도 씁쓸해진다. 가식적인 사과보단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더 선진국이겠지.


미국이란 나라, 점점 더 궁금해진다.  

미국은 과연 선진국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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