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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쏭쏭계란탁 Oct 24. 2020

타향살이 속 코로나 단상

하루확진자 8만명의 나라

2020년 3월 13일. 혼돈의 하루였던 그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한국이 설 즈음부터 코로나가 심각해졌으니 약 한 달 정도 차이가 나지 싶다.


상황은 아주 긴박하게 돌아갔다. 메사추세츠주 비상사태가 선포된지 이틀만에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데이케어 등 모든 기관은 문을 닫기로 결정됐고 MIT와 하버드 기숙사는 그날로 학부생들을 내쫓아버렸다. 그냥 다 집으로 돌아가라고...(그땐 굉장히 말들이 많았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코비드 전파의 주범인 혈기왕성 20대들을 찢어놓은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이런 난리통 속 '13일의 금요일'인 그 날은 언제 다시 문을 열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이들끼리 작별인사할 시간을 주자는 의미의 마지막 날이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학교, 데이케어에 넣고 담주부터 난 죽었구나....(일줄 내내 주말이니) 싶은 마음으로 식량창고나 채워넣자는 심정에 자주 가던 마트로 향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텅텅 빈 마트 진열대. 2020년 3월 13일은 공포의 도가니탕이었다.

오전 9시. 평소라면 한산했을 마트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모든 진열대는 텅텅 비어 있었고 저마다의 카트는 흘러 넘칠 때까지 가득 차 있었다. 왜들 그렇게 휴지를 사는지.. (이날 이후 실로 휴지는 한동안 구하기 어려웠다.) 엄마와 같이 장보기에 나선 어린 아기들은 기나긴 계산줄에 지쳐 울어제꼈고 사람들의 눈엔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와....진짜 전쟁통 속 사재기가 이런 거구나. 굳이 내가 타향살이를 할 때 이런 일이 생길게 뭐람. 정말 이러다 전쟁이라도 터지는게 아닌가 덜컥 겁이 나기까지 했다.



이후 7개월이 흘렀다. 좀있음 연말이다. 허허허. 며칠 전 네살배기 둘째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수현아, 사람이 뭐야?”라는 질문을 했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피해다녀야 하는 거!!!”라고 자랑스럽게 답했다. 외출할 땐 나보다 더 마스크를 찾고 두 눈만 세상에 내놓은 채 살아가는게 이 아이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일이 돼버렸다. 이제 막 등교를 시작한 큰아이는 밥 먹을 때 말고는 하루종일 마스크를 한 번도 벗을 수 없단다. 초등학교 1학년, 한참 유치가 빠지는 나이라 친구들끼리 나는 이빨이 3개 빠졌는데 쟤는 5개나 빠졌다는 수다를 떨면서 바보같은 서로의 모습에 낄낄대야 하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도통 옆자리 친구 이빨 빠진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쉽다고 했다.


정말이지 코로나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이제 우리에게, 내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순간순간 답답하고 안타깝고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지만 어쩌겠는가. 정작 본인들은 여전히 해맑고 이 아이들에게 마스크는 이제 팬티 같은 존재가 돼버렸는걸. ㅋ간만에 꺼내본 작년 사진첩 속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이 영 어색하기만 하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다녀온 뉴욕의 락펠러센터 앞. 사람들로 가득찬 이 사진이 그렇게 어색할 수 없다.


전 세계 제약사에서 뛰어든 백신경쟁은 트럼프 아저씨의 설레발에 힘입어 마치 내일이라도 당장 세상에 나올 것처럼 떠들어댔지만 여전히 언제 백신이 상용회될지는 오리무중이다. 여러 회사에서 예기치 못한 부작용으로 임상을 일시 중단했고 며칠전엔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 중인 백신의 임상 대상자가 사망했다는 소식까지 나왔다. 이쯤되니 백신이 나와도 맞기가 망설여진다.


코로나 이후 기업들의 실적은 ‘집’에서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비즈니스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렸다.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의 구독자는 미친듯이 늘어난 반면 영화관과 항공사, 여행사 같은 집 밖으로 나가야 돈이 벌리는 업계는 완전 쪽박을 찼다.


과연 코로나가 끝나고 난 후, 아니 영영 끝나진 않더라도 치료제라도 나와 정복 가능한 질병으로 바뀐 후에 우리네 삶은 어떻게 변할까. 그것이 요즘 나의 최대 궁금증이다.


 뭣보다 이번 기회로 근무형태는 확실히 변할 것 같다. 여기저기서 재택근무가 ‘의외로 괜찮네?’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미국 회사들은 발빠르게 자리잡았다. 트위터는 이미 원하는 직원이 무기한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했고, 페이스북은 직원 절반의 영구적 재택근무 체제를 준비 중이란다. 구글과 아마존도 최소 내년 여름까지 전직원 재택을 선언했다.


남편의 동기들 중엔 졸업 후 아마존으로 이직한 애들이 여럿인데 본사가 있는 시애틀로 이주한 친구들은 많이 없다. 렌트비가 싼 지역으로 이동해서 집에서 근무한다. 이때문에 뉴욕이나 보스턴 같은 대도시들에 있는 아파트는 10달 넘게 계약시 2달 공짜 이런 파격적인 프로모션을 내걸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이 비싼 도시에서 빠져 나가고 있단 얘기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다. 며칠 전 집앞에 나가보니 신기한 모양의 이글루(?)가 거리에 생겨 있었다. 야외장사를 하는 식당들도 겨울을 나기 위한 갖은 아이디어를 총동원 중인가보다. 이글루가 실내보다 나은건가 ㅋㅋ환경에 적응하려는 인간들의 노력은 실로 존경스럽다.

겨울을 나기 위한 레스토랑들의 노력.

어제자로 미국의 하루 코로나 확진자는 8만명을 넘어섰다. 3월 이후 거의 최고 수준이란다. 길리어드사의 렘데시비르는 FDA로부터 첫 코로나 치료제로 승인을 받았고 큰딸은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등교 중이다.


인간은 과연 코로나를 정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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