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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쏭쏭계란탁 Sep 30. 2020

우리 남편이 달라졌어요!!

사람은 고쳐쓰는거 아니라고 했는데...

미국에 온지 1년하고도 4개월이 흘렀다. 그간 우리 가족에게 크고 작은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나 스스로 평가하기에 그 무엇보다 뿌듯하고 감격스러운 변화는 바로 남편이 달라졌다는거다.


사실 우린 6년이란 긴 시간을 연애하고 결혼했지만 자라온 가정환경이 거의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교장선생님을 끝으로 화려하게 은퇴한 신여성의 전형 울 엄마와 한평생 가족의 서포터로서 희생의 아이콘으로 살아오신 울 어머님. 존경해 마지않는 두분이지만 그들의 생활양식은 상극이었다.


그 사이의 우리 둘이란?! 물과 기름, 피자와 된장국 정도 되려나...때려 죽여도 타협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으니 그거슨 바로 가사일이었다.


와이셔츠 5장과 주말식사는 아내 몫?!


남편은 결혼 첫날부터 지나치게 당당히 주말 식사와 다음주중에 입을 와이셔츠 5장은 늘 다려져 있으면 좋겠다고 요구했고 그게 무슨 문제가 있는 발언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내 셔츠도 오빠가 다려주는거야?!”였으니...이후 출산과 육아 과정에서 우리의 불협화음은 가히 가정법원 문턱 앞까지 안간게 다행이었던거다.


실제 당시 나의 분노로 점철된 육아일기 ‘미생맘 다이어리’에서는 하도 남편 욕을 대놓고 해놔 보는 내 친구들이 나한테 미친X이라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그렇게 서서히 서로를 포기하고 적당히 뭉게고 있을 때쯤 미국행이라는 변화가 생긴거다. 양가 부모님의 육아도움도, 공짜어린이집과 급식도 없는 말 안통하는 그 미국 말이다.


첫 석달의 적응기는 눈물없인 들을 수 없다. 나는 내 커리어 다 포기하고 그저 서포터로 따라온 내 신세도 한탄스러운데 마켓컬리도, 배민도 없는 이억만리에서 삼시세끼가 내 손에 달려있단 사실은 마치...사회면 전체를 나 혼자 다 막으라는 것 이상의 중압감이었다. 심지어 난 계란후라이도 잘 못하는 요리고자였다.

삼시세끼 나만 보고 있는 이 아이들에게 매번 계란밥만 먹일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결국 초반에 공부한답시고 한국보다 더 밖으로만 돌던 남편은 한국보다 더 가부장적인 일본것들이랑 몰려다니며 더더더 의기양양해졌고, 내꺼 다 포기하고 따라와줬는데 이따위로 할거면 때려치라는 나의 대립은 극으로 치달았다.


결국 난 영어도 안되는데 울면서 다른 와이프들한테 내 고민을 털어놨고 결론은 집안일 할일 리스트를 냉장고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으라는 답을 얻고 실행했다.

코로나가 남편을 움직였어요.


이후 조금씩 적응을 해가던 우리에게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으니 바로 Covid-19 이란 놈이다. 미국은 후져서 한국과 달리 말그대로 봉쇄(lock down)를 했다. 가방매고 나갈 학교도 그 흔한 커피숍도 못가는 상황에서 우린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나 결혼하고 이렇게 24시간동안 가족과 붙어있는 시간이 있었던가. 이 시간은 비록 바이러스라는 재앙으로 찾아왔지만 어떤 의미에선 우리에게 축복이었다.

24시간 요 두 똥강아지들과 함께하는 일상이 6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돌아보면 더없이 좋은 추억이겠지만 당장 하루하루는...음...ㅋ

바로....남편이 가사일을 본인의 과업이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한거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루종일 집에 있다보니 쓰레기는 언제 차고 빨래는 언제 해야하며 밥 때는 왜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누구보다 잘 알게 됐다. 그리고 소위 ‘바깥일’이 모두 차단된 시점에서 그 일들은 바로 아내의 일, 엄마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 되고 있었다.


이유식 좀 제발 같이 만들자는 내게 “나는 이유식 같은거 못만들어”라며 단호하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닭갈비에 파스타, 비빔면 이제 갈비찜 레시피까지 뒤적거리는 단계에 이르렀다. 아침을 내가 하면 자연히 점심은 자기가 해야겠다는 일말의 책임감까지 생겼으니...이쯤되면 난 코비드에 엎드려 절해야 할 판 아닌가!


요리하는 남자의 뒷모습, 그얼마나 섹시한가!
바보야! 문제는 밤문화야.


‘82년생 김지영’이 한참 유행하던 때 난 도대체 왜 ‘한남’이란 단어가 존재할까 고민했었다. 똑같이 맞벌이하는데도 왜 육아와 가사는 늘 엄마가 1차 책임자여야 하고, 야근과 회식은 왜 항상 엄마만 눈치가 보이고, 여기저기 죄송한 사람은 꼭 엄마여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직원이 둘째 가졌다고 얘기하면 상사로부터 “어이쿠 이제 더 열심히 일해야겠네”라는 평가를 받는 반면 같은 말을 하는 여자직원에겐 “이제 곧 퇴사하겠네”라는 말을 내뱉는 사회에서 아등바등 살아내야 하는 내 자신이 한없이 슬퍼질 때도 있었다.


근데 1년 남짓 전세계서 모인 학생들과 미국생활을 해보니 어느정도 이유를 찾았다. 미국과 유럽 등 가정적인 남성들이 있다는 그곳에는 바로 ‘밤문화’가 없다는 사실이다ㅋㅋ가게들은 죄다 7시반이면 닫고 회식과 접대, 야근같은 것도 드물다. 원래도 개인주의 문환데 직장 동료와는 뭔가 더 확실하게 거리를 두는 편이라 점심도 대부분 혼자 해결한다. 그러니 회사 끝나고 다들 어딜가나. 집으로 겨들어가서 가족과 함께 해야지 ㅋㅋ

많은 학교 행사들이 가족동반이다. 주최측에선 Kids를 위한 공간과 놀이를 제공한다. 엄빠들은 저 안쪽에서 소셜과 밥을 먹는다.

또 하나, 누구랑 친해지고 싶으면(심지어 비즈니스적 관계일지라도) 그렇게 집으로 불러댄다. 그것도 가족과 함께ㅋ 호스트쪽 아빠와 엄마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븐에 붙어있고(이 대목에서 한식의 진입장벽이 높은 것도 김지영의 한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서양요리는 넘 쉬워 누구나 금방 한다) 아이들과는 찐으로 놀아준다. 아빠들이 가정적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가정적이었던게 아니고 그 사회환경이 그렇게 만든거다.

파티문화의 발달은 주거공간에도 반영됐다. 아파트마다 있는 공용공간에서는 삼삼오오 가족단위로 모여 서로 가져온 음식을 놓고 즐긴다.

일례로 스웨덴 육아정책 취재 때 겪은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현지 정부부처 담당자랑 인터뷰를 한 후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의 선진적인 정책에 감동하고 있을 때쯤 인터뷰이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이 왔다. 이유인즉슨 자기는 지루한 스웨덴을 벗어나 막 네온싸인이 번쩍이는 익사이팅한, 라잌 코리아같은 곳에서 일하고 싶은데 자리 있음 소개 좀 부탁한다는 거였다. 대반전 ㅋㅋㅋ


짠,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곳인가?! 코로나에도 부어라 마셔라 하며 흔들어댈 수 있는 술집과 클럽이 지천에 널려있다. 아니 여자인 나도 한국의 밤문화가 그리운데 남자들은 오죽하랴..일본은? 말해 뭐하나 입만 아프지 ㅋㅋ결국 환경이 한남을 만들었다는게 나의 지론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쯤에서 다시 남편 이야기를 하자면 난 우리 남편이 가사일만 하면 정말이지 완벽한 남성의 전형이 될 거라고 늘 상상했었다. 근데 그게 아니더라 ㅋ 가사일에 대한 많은걸 알게된 만큼 그 반대급부로 잔소리가 늘었다.......이거슨 예상치 못한 변수다.


어쨌든 오늘의 결론!! 내 평생 지론이었던 사람은 고쳐쓰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미국에 온 후 조금 달라졌다는 거다. 환경이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는 걸 미국이, 코로나가 내게 알려줬다. 바꿔 말하면 이 정도급의 충격요법이어야 바뀐다는 거일지도?!


같은 시대를 살아도 환경에 따라 우리네 삶은 참 다르다는걸 미국살이 1년 해보고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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