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도시 보스턴의 진심
2020년 10월 13일. 드디어 D-day다. 초등학교 1학년 딸래미가 7개월 만에 다시 학교가는 날. 코로나로 주 비상사태(state emergency)가 선포되고 3월 13일을 마지막으로 학교 문을 닫은지 정확히 7개월 만이다.
코로나 기간 중 한국에 있질 않아서 정확한 비교는 어렵지만 코로나에 대응하는 미국과 한국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한국은 철저한 방역과 온 국민이 100%에 가까운 마스크 착용률을 자랑하며 그 덕에 식당과 학원 등 일반 상점들은 나름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듯하다. 가족들에게 물어봐도 2.5단계로 격상된 때를 제외하고는 헬스장도 갈 수 있다던데..
하지만 미국은 정말 무식(?)한 셧다운 방식을 택했다. 말그대로 셔터 닫음.ㅋㅋ 지금은 많이들 마스크를 쓰지만 여전히 놀이터만 나가도 마스크 안 쓴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확진자 동선공개 뭐 그런거 따윈 없다. 코로나 걸린지 열흘 만에 마스크 내던지고 선거유세하러 다니는 대통령이 있는 나란데 말 다했지 뭐..
개인의 자유가 그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나라이기에 그냥 각자 알아서 조심해야 하는 시스템. 고위험군인 할무니, 할아버지들이 코로나 시작되고 나서 집에서 잘 안나오시는 이유다. 이처럼 무증상 전파자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걸 그 누구도 저지할 수 없기에 식당이나 상점들이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은 야외테이블과 배달 뿐이다. 스타벅스는 여전히 안에서 커피를 마실 수 없고 in dining이 불가능한 레스토랑도 수두룩하다. 우리 아파트 헬스장은 내가 이사왔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굳게 닫혀있다.
학교에 보내는게 맞는건가
이런 상황에서 7개월만에 핏덩이 같은 내 새끼가 처음으로 다시 학교에 가는 날이 바로 오늘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어젯밤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과연 이게 잘한 결정일까 싶으면서도 그렇다고 내도록 아무것도 안하고 방구석에 쳐박혀있는 것도 정답은 아닌 것 같아 remote에서 in-person으로 결정을 번복했던 나다. 이 결정에 대한 확신은 없는데 이미 내 새끼는 마루타가 되어 전쟁터에 던져지는 것만 같아 자꾸만 자꾸만 두려워졌다. 차라리 내가 학교에 가는게 낫겠다 싶었다.
한국나이로 8살이지만 생일이 9월인 탓에 미국에서는 이제야 초1이 되는 딸래미는 "마스크만 잘 쓰면 코로나 절대 안걸려"라는 내 말을 굳게 믿은 채 "엄마! 너무 좋아! 근데 너무 떨려!!"를 반복하며 잠들었다. 새학기라고 인터넷으로 주문한 새옷과 새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해놓고 찬장 구석탱이에 밀어놓은 도시락통을 다시 꺼내면서도 난 '아..그냥 보내지 말까'를 오만오천번 정도 고민했다.
나의 깊은 고뇌와 뒤척임따윈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아침은 어김없이 밝아왔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다. 두려웠다. 하지만 이 모든 걱정과 불안도 7개월만에 다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난다는 딸래미의 설렘을 이길 순 없었다. 오전 8시 30분. 마스크와 손세정제, 항균티슈로 무장한 딸래미는 깃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실로 걸어들어갔고 학생 외에 누구도 건물에 들어올 수 없는 규정상 부모들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들여보내고 나서도 다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성였다. 주책맞게 눈물은 왜 나는지...정말 '물가에 내놓은 아이'같다는 그 표현이 딱 들어맞는 날이었다. 물이 아닌 바이러스긴 했지만. 에이씨 망할 코로나.
컴퓨터가 대체할 수 없는 그 어떤..
그렇게 60시간 같은 6시간이 흐르고 다시 교문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뛰어나오는 아이를 보는 순간 내 걱정은 눈녹듯이 녹아 내렸다. 아이는 학교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미주알 고주알 설명했다. 내가 생각하는 무쒹한 미국이 아니었다. 자리는 모두 6피트씩 떨어져서 테이핑이 돼있고 타인과의 컨텍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내에서의 화장실 사인처럼 화장실이 비어있는지 아닌지를 교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버튼이 설치됐단다. 작년에는 모두 쉐어했던 학용품들도 개인별로 일괄 지급하고 자기 자리에서 모든 수업이 이뤄지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화면으로만 보던 선생님과 친구들을 실제로 본 아이들의 기분은 말그대로 째졌다. 컴퓨터가 채워줄 수 없는 인간의 사회성이 7개월만에 다시 발현된 순간이었다.
하교 후 우리로 따지면 교육청에서 온 메일은 딱 내 심정 같았다. 미국에 와서 느낀 점 중 하나는 다른건 몰라도 공교육 하나 만큼은 정말 배울게 많다는 것이다. 이게 또 주마다, 시티마다도 천차만별이라던데 미국 중에서도 하버드와 MIT 등 명문대들이 몰려있고 학구열이 세다는 이 곳 보스턴의 공교육은 너무 부러워서 샘이 날 정도다.
이를테면 학교가 갑작스럽게 문을 닫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온라인 수업을 위한 노트북과 필요시 와이파이까지 무상지급했다. 학교에 오지 않으면 밥을 챙겨못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학교측은 매일 12시에서 1시까지 아이들과 함께 가기만 하면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이 수만큼 아침, 점심분 도시락을 나눠줬고 담임교사들은 학교에 남아있는 아이들의 소지품을 전해주기 위해 모든 학생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자전거를 타고 우리집까지 와서 무릎을 꿇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소지품을 전해주는 담임선생님의 모습은 지난 삼십여년간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온라인 수업의 진행 방식은 생각보다 훨씬 훨씬 효율적이었다. 내게 온라인 수업이란 걍 틀어만 놓고 놀거나 먹거나 자거나 셋 중 하나를 하는 형식적인 그 어떤 툴? 정도인데 이건 그게 아니었다. 수업 첫 날 가장 먼저 한 일은 많은 수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들어와있는 특성상 이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한 수신호를 가르치는 거였다. 모든 수업 장소와 참고자료 등은 구글밋과 유튜브 등 여러 매체를 연동해 촘촘하게 연결돼 있었고 음악과 미술, 체육까지도 온라인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이 가상했다.
특히 교사와 아이들 사이 과제를 내주고 피드백을 주고 또 수정하는데 사용하는 seesaw라는 프로그램은 정말 어메이징했다. (이건 유튜브에서 더 자세히 다뤄볼 예정이다). 물론 엄마인 내가 어쩔 수 없이, 비자발적으로 수업에 involve되는게 매우 귀찮았지만 이 또한 미국 교육의 접근방식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실시간 채팅이 부담스런 교사들
한국에 있는 친구왈 한국의 초1들은 학교에 안가는 날엔 EBS를 틀어주고 뭐 대충 띵가띵가하다가 끝난단다. 실시간 채팅을 하긴 하는데 미국처럼 몇시간씩 하는건 아니고 무엇보다 교사들이 실시간으로 학부모들이 이 모든걸 지켜보고 있다는걸 부담스러워한다고 했다. 설사 열정적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은 교사들이 있다한들 개인의 자율재량권이 제한적인 우리나라 공교육 특성상 윗선의 반대에 부딪힐 공산이 크다.
오랫동안 관료조직을 취재해온 나의 결론은 우리 공무원 조직은 '책임'에 너무나도 민감하다는 것이다. 학교 문 열었다가 코로나 환자 나오면 누가 책임질건데? 온란섭에서 혁신적인 툴을 마음대로 이용하다 학부모한테 태클 들어오면 누가 책임질건데? 이놈의 책임 소재 따지다 열정적인 교사들은 점점 더 무기력해지고 그냥 시키는대로 하는게 젤 속편한. 그러면서도 4시45분에 칼같이 퇴근해야 하는 그런 곳이 바로 우리네 공교육의 현주소다. 고용의 안정성이 교육의 질을 깎아먹고 무거운 책임 유무가 혁신을 저해하는 그런...
학교 문을 열기 며칠 전 저녁 7시반에 학교와 학부모들간 온라인 미팅이 있었다. 늦은 저녁시간이었는데도 학교장과 담임교사, 보건교사, 각 분야 학교스탭들까지 모두 참여한 토론이었다. 모두가 학교 오픈을 앞두고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학부모들의 쏟아지는 질문공세에 회의는 예상시간보다 더 긴 9시가 넘어서까지 이어졌고 학교는 모든 의견에 굉장히 상세하게 귀기울였다. 코로나에 대응하는 메뉴얼을 모두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가 책임을 지고 누구 탓을 해야 하냐는 의문 따윈 없었다.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아이들을 향한 교육을 멈출 수 없다는 진심이 느껴졌다. (물론 일을 해야만 하는 부모들 입장에서도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학교는 반드시 필요하다) 확진자가 다시금 증가하고 있는 이 상황 속에서도 학교를 믿고 아이를 보낼 수 있는 신뢰는 이 진심에서 쌓여가고 있었다.
미국 최초의 공립학교
보스턴 시내에 가면 School Street이란 거리가 있다. 거리 자체는 짧지만 미국 최초의 공립학교가 세워졌던 자리다. 교육이란 귀족들만이 받을 수 있는 특별한 것이라는 생각이 당연하던 시절,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은 배움의 기회가 있어야 한다며 설립된 공립학교 말이다. 그들이 가진 공교육을 향한 철학은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었고 모르긴 몰라도 코로나로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미치도록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