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두명
미국에 와서는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다. 일단 시작하면 마지막회까지 밤을 새서라도 봐야하는 성격상 드라마를 보면 일상이 너무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난 1년간 사랑의 불시착, 부부의 세계, 동백꽃 필 무렵 이 세개의 명작은 도저히 외면할 수 없어 완주했다. ㅋㅋ
그중에서도 으뜸을 꼽으라면 당연 ‘동백꽃 필 무렵’이다. 로맨스, 휴먼, 스릴러까지 모든 장르를 섞어 재미를 배가시키고 결국 우리 안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 이 드라마를 고작 30대 작가가 썼다는게 놀라울 따름이다.
1.
작년 딸래미가 첨으로 등교한 후 부모들끼리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영어도 안되는 이방인이지만 어떻게든 껴보겠다고 굳이굳이 참석해서 시덥잖은 인사를 나눌 때였다. 딸이 처음으로 친해진 여자아이의 가족들이 옹기종이 모여있었는데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먼저 내게 인사를 건네왔다.
“Hi! I am one of Emily’s daddies.”
응? 아빠들? 보니깐 그 가족들 중 내 또래의 여성은 없었다. 남편 또래 남자 둘과 할머니 한 분, 그리고 딸 둘. 뭘까...전아빠와 현아빠? 그러기엔 엄마가 없는게 이상한데...알고보니 그 가족은 말로만 듣던 게이커플이었다. 그것도 이혼한 게이커플...야심차게 아이 친구의 엄빠랑 친해져보겠다는 나의 첫 대상부터 이런 하드코어라니 ㅋ웃음이 나왔다.
2.
한번은 기숙사 앞에서 아이와 함께 스쿨버스를 기다릴 때였다. 엄청 젊고 예쁜 엄마와 그와 대비해 큰 딸아이가 같은 스쿨버스를 기다렸다. 나는 으레 그렇듯 인사를 나눴고 너 남편은 어느 전공이 뭐냐고 물었다.
“아~남편이 아니고 내가 MIT 다녀. 그리고 나 남편 없어!” 라고 상냥하면서도 당당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공부하는 남편따라 와서 아이를 케어하는 엄마일 거라고 가정하고 내뱉은 질문이 너무도 부끄럽게 느껴진 날이었다.
3.
남편과 같은 비즈니스스쿨엔 100여명의 학생들이 있었는데 직장경력 10년차 이상만 지원 가능한 프로그램인 터라 가족 단위의 가정이 대부분이었다. 이때문에 유난히 가족모임이 잦아 각국의 와이프들과 자연스레 친해졌다. 한 번은 내가 평소에 넘 좋아라 하던 미국언니네 집에서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각자 자신의 러브스토리니 살아온 이야기 등등 신나게 입을 털었다.(수다 좋아하는건 전세계 공통이다). 그 언니왈,
“내 남편은 전 여친 사이에서 17살 때 아이를 낳았어. 나랑은 스무살 때 첨 만났는데 나는 이 남자가 그렇게 어린 나이에도 아이를 포기 안하고 알바 몇개씩 뛰면서 학교다니는게 그렇게 멋지더라. 완전 반했잖아.”
라는 거였다. 와우...나이 스물에 애까지 딸인 이혼남에 반했다고?
위 세가지 사건은 미국에 와서 내가 ‘가족’이란 의미에 대해 얼마나 편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지대로 느낀 경험이었다. 여성가족부를 취재하면서 입과 손으로는 동성애 커플이나 싱글맘/대디, 동거커플 등등 모두 또 다른 가족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구장창 외쳤는데 내 안에는 이미 정형화된 가족의 그림이 견고하게 박혀 있었던 거였다.
아이 학교에서 나눠주는 가정통신문은 언제나 ‘학부모님들께’아 아닌 ‘Dear Parents, Guardians, Caregivers’라고 쓰여있다. 아이를 키우는 대상이 부모 외에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걸 기본 전제로 깔고 있는 셈이다.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가족이 잘못됐다는게 아니라 그 외 다양한 모습으로 구성된 저마다의 가족을 동등하게 (적어도 겉으로는) 여겨주는 이곳의 방식이 꽤 멋져 보였다. 비록 너~~~~무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나머지 별 해괴한 일들도 벌어지지만 말이다 ㅋ
미국언니들이 들으면 동백이가 필구를 혼자 낳아 키우는게 용식이랑 만나는데 뭐 그리 대단한 결격사유가 되며 둘이 좋다는데 용식이 엄마가 그토록 반대할 건 또 모냐고 할거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스토리 사이사이 깔려있는 한국적 정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지도ㅋㅋ본인은 꿋꿋한 동백이 같던 남편에 한눈에 뿅 갔는데 말이지. 물론 이 언니들에게도 “사랑에 빠진게 죄는 아니좌나~~~!”라고 외치던 이태오는 용서가 안되겠지?ㅋㅋㅋㅋ
각종 언어 인종과 종교, 온갖 히스토리가 짬뽕된 나라 이곳 미국에서 배워가는 가장 큰 자산은 다른아닌 ‘남은 나와 다를 수 있다’는 다양성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