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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쏭쏭계란탁 Oct 18. 2020

당연한 것들의 반란-부동산편

집은 무조건 남향 아닌가요?

36년 평생 처음으로 내 나라가 아닌 곳에 살면서 의외로 얻은 수익이 있다. 그거슨 그동안 나도 모르게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현상, 가치, 믿음들이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거다. 처음엔 뒤통수를 한 대 맞은것마냥 얼얼하지만 생각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런것들 말이다. 그 가짓수가 너무 많아 분야별로 쪼개서 연재해 볼까 한다 ㅎㅎ 이름하야 ‘미국살이 속 당연한 것들의 반란’ 정도랄까.

우리나라와 다른 건물들을 구경하는건 언제나 재밌다.

오늘은 그 첫번째로 부동산 편이다. 난 개인적으로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경제지 기자여서인지 이 명제의 당위성을 떠나 ‘대한민국=부동산’ 이란 현상을 일찌기 이해했고 결혼 직후부터 부지런히 청약을 넣었다. 오만오천번쯤 떨어졌을 때쯤 당첨의 행운이 찾아왔고 몇번의 매매와 차익실현을 통해 지금 남편의 학비 밑천을 마련했다.


이 경험을 통해 내게 새로 생긴 취미가 있었으니 바로 집구경이다 ㅋㅋ 겉에서 보는 집이 안에 들어가면 뷰와 향은 어떤지 물은 잘 나오는지, 지은지 30년도 넘은 구축 아파트의 수압과 난방은 어떤지 그런것들을 살펴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마치 1980년대로 회귀한 듯한 기숙사. 그래도 월세 200만원은 가뿐히 넘는다.


나의 이런 호기심은 미국에 와서도 발동했다. 예산이 빠듯한 우리로선 처음엔 시세의 절반(이라고 해도 월 2000불)인 기숙사를 포기할 수 없었다. 집 안에 세탁기와 에어컨, 집 밖에는 엘레베이터가 항시 대기중인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라는 사실을 뼈져리게 깨달은 1년의 기숙사 생활을 뒤로하고 드디어 우리만의 아파트 계약을 하러 나서면서 이집 저집 탐방할 기회가 찾아왔다.

이곳의 아파트들은 아무리 높아도 5층 이상인 곳이 별로 없다. 땅덩이가 넓어서 그런듯.

아파트가 대부분인 한국과 달리 미국은 싱글하우스(단독주택), 타운하우스(연립주택이라고 해야하나..땅콩주택같은 느낌?!), 아파트 등으로 주거형태가 다양하다. 아쉽게도 우리는 1년 미만의 단기계약을 맺어야 했기 때문에 대형 매니지먼트가 관리하는 아파트만이 선택지에 놓였다. 미국살이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선 싱글하우스에 살아야 한다는데 구경도 못해본게 매우 아쉽다.


북향집에 산다고?


미국 부동산 탐방에서 가장 놀라웠던 건 여기 사람들은 향(Exposure)을 안따진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낮에 해가 잘드는 남향을 선호한다. 정남향이라면 4동밖에 못짓는 땅에 남동향, 남서향이라는 이름을 단 아파트들을 비스듬하게 왕창 때려넣는 것도 이 이유에서다. 낮에 해가 안드는 북향 집은 거의 찾아볼 수도 없다. 특히 아파트는 더.

이 아파트는 서향이다.

그런데 왠열..여기 사람들은 향에 지나치게 관심이 없다. 심지어 북향 아파트도 수두룩하다. 집 보러 다닐 때 나침반까지 대동하면서 향 따지는 사람은 한국인밖에 없단다. 아직도 의심스럽지만 울나라 사람들이 집의 향을 따진다는 걸 더 신기해하는게 여기 문화다. 너무 놀랍지 아니한가!!  햇빛이라면 웃통 다 까고 여기저기 벌러덩 드러눠 광합성부터 하는 민족이 왜 유난히 집 방향에는 관심이 없는지 모르겠음.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각종 비치와 공원들. 이곳에서 자연은 차고 넘치게 누릴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나는 이 사람들에겐 자연이 너무 쉽게 누릴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란 결론을 내렸다. 주로 개인정원(Yard)이 있는 싱글하우스에 사니깐 집에서 한발자국만 나가면 사방에서 해를 받는게 가능하고 아무리 도심이어도 백사장과 각종 공원들이 지천에 널려 있으니까?! 흠..여전히 잘 모르겠다. 해 잘드는 남향집이 짱인데...쩝.


땡처리 아파트 렌트?


그 다음으로 놀라웠던건 아파트의 계약시점이다. 우리나라는 집을 구하려면 월세라 하더라도 통상 두달 전, 늦어도 한달 전에는 모든 계약이 끝나있다. 한 달 전에 집보러 다니면 맘에 드는 집 구하기 어렵다.

일별로 다르게 책정되는 아파트 렌트비.

하지만 여기 아파트들은 전혀 다르다. 일단 대부분의 아파트들이 개인 소유가 아니라 대형 기업이 렌트 목적으로 지어서 관리한다. 그래서 아파트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매물과 날짜별 가격이 일률적으로 쫙 나와있다. 무슨 땡처리 항공권처럼 낼 당장 이사갈 때 렌트비가 제일 싸고 우리처럼 두달 전에 계약하려면 훨 비싸다.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빠르면 한달전, 보통 2주 전에 렌트 계약을 한다. 땡처리항공권을 사듯 렌트쇼핑 다녀야하는 이곳은 역시 자본주의의 끝판왕 미국이다.


아시안과 찰떡궁합 장애인 유닛
휠체어 탄 상태에서 닿을 수 있는 수건걸이와 초1아이 눈높이에 맞는 냉장고. 장애닛 유닛은 아이들이 있는 집에도 좋다.

또하나. 이건 우리집 얘긴데 아파트마다 장애인용 유닛이 따로 있다는 사실. 우리집을 첨 보러 왔을 때 같은 평수의 다른 집보다 렌트비가 싸길래 위치가 안좋은가 했는데 의외로 뷰가 좋았다. 오히려 건물로 시야가 막힌 유닛이 더 비쌌다. 왜지?? 그건 우리집이 장애인 유닛이었기 때문이다. 휠체어가 집 안에서 돌아다닐 수 있게 설계된 터라 전체적으로 물건들의 높이가 낮다. 미국집 싱크대나 변기 등은 아시안에게 생각보다 높아 변기에 앉았는데 바닥에 발이 안닿는 굴욕적인 경험을 할 때가 종종 있는데 여긴 아니다. 오히려 덩치 큰 미국인들에겐 너무 낮아 수요가 적어 가격이 싸진 거다. 결과적으론 난쟁이인 나와 어린 아이들이 있는 집엔 안성맞춤이다. 휠체어족들을 위한 곳곳의 세심한 배려는 덤이다. 장애인 유닛이 있는 아파트가 우리나라에 있던가.

휠체어가 진입 가능할 정도로 넓은 화장실과 앉아서 열 수 있는 오븐.


헉소리나는 렌트비


마지막으로 뭐니뭐니해도 렌트비. 전세제도가 없는데다 도심지역인 보스턴 시내는 방2개에 월 3000불은 우습게 넘는다. 인터넷, 수도, 전기 등은 다 따로다. 기가 막힌 노릇이다. 애가 셋이면 집도 무조건 방3개 이상짜리로 구해야 하는데(주의 규정이다) 정말 헉소리나는 시세다 ㅠㅠ 매달 숨만 쉬어도 3000불 넘게 나가는게 당연하다보니 전세라은 제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좋은나라가 절로 나온다.


모기지 왕창 땡겨서 집을 사도 미국은 또 재산세가 한국보다 훠얼씬 비싸 유지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집값의 0.1~0.4%로 고작 1년에 일이백마넌 나오는 한국의 재산세도 부담스러워 7, 9월엔 마음이 헛헛한데 미국의 재산세는 보통 1%, 많은 주는 2%까지도 나간다. 그니까 한국의 열배?! 라고 보면 되려나...그래두 엥간한 서울 아파트들은 10억이 우스운데 그돈이면 여기서 정원딸인 2-3층짜리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건 매력적이다.


미국의 다른 주들과 다른 나라들의 부동산 시장은 어떨지 점점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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