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의 나라 미국
미국에 와서 정식으로 학교에 다니진 않았지만 공립도서관이랑 문화센터 등에서 하는 영어클래스, 남편 학교에서 가족들에게도 수강기회를 하는 몇몇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느꼈던 건 미국인, 정확히는 내 기준에서 서양 사람들은 참 말이 많구나...는 것이었다. 아, 독일인은 좀 예외다. 교수가 무슨 말 한마디 하면 사돈에 팔촌 얘기까지 다 끄집어내 듣다 듣다 한숨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잡아먹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선생들은 아주 진지하게, 굉장히 좋은 리액션을 해주며 경청을 하곤 했다. 이들에게 발표와 토론은 본인이 관련 분야 지식이 해박하든 말든지간에 아주 흔한 일상이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내 기준에선 주제와 관련 없는 세상 쓸데없는 얘기가 절반이 넘을 때가 많았다.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지금 저 얘기을 하지? 싶은 것 말이다.
반면 교수가 뭘 물어볼 때 절대 손들지 않는 대표적인 종족을 고르라면 한국인과 일본인이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는 안되겠으나 대체적으로 이 사람들은 앞자리에도 잘 안지 않는다. 남편 섭에서는 한국사람들이 하도 손을 안들어서 Cold Call(교수가 무작위로 지명해서 시키는 발표)을 당할 때가 많단다. 물론 언어장벽때문인 면이 없잖아 있겠으나 태생적으로다가 저요, 저요! 하는 민족이 아니란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의외로 막상 입이 무거운 이들이 알고있는건 저 사존에 팔촌까지 별얘기 다 하는 사람들보다 다 많을 때가 많았다.
왜지? 왜일까. 나는 이게 너무 궁금했다. 그리고 그 답은 딸래미가 공립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찾았다. 그 차이는 바로 아주아주 어릴 때부터 행해지는 교육과 평가방식 또 문화에서 나왔다.
일단 딸아이가 학교에 가면 동그랗게 둘러앉아 가장 처음으로 하는 일은 전날 있었던 일을 Share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말을 잘 못하거나 더듬어도 선생님은 끝까지 한 톨도 빼놓지 않고 아이의 말을 듣고 반드시 그에 따르는 꼬리질문을 해줬다. 이걸 하다보면 매일같이 자기얘기를 하는 아이와 부끄러워 뒤로 숨는 아이가 있기 마련인데 그럴 때면 선생님은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 없는 아이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식으로 모든 학생들이 자기 경험을 Share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영어가 딸려 처음엔 이 시긴을 넘넘 싫어하고 두려워하던 딸래미도 시간이 지나니 먼저 손 들고 그냥 아무말이라도 하고 있었다.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이상 부끄럽지 않게 된거다. Sharing이 발전해 Debating이 되고 미국인들은 어떤 주제에 대해 언성을 높여가면서 싸우고 누가누가 더 잘났나 시합하는게 일상이자 문화다. 이들에게 정답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에 대한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필터링 없이 말할 뿐이다. 학교에서 평가하는 기준 역시 이런 능력과 연결된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한다. 그래서 이런 방식을 아주 영민하게 이용하는 학생들은 질문을 많이하는게 좋은 평가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아 별 쓸데없는 것까지 겁나 물어본 후에 막상 교수가 대답할 때는 이어폰을 끼고 지 할일을 한단다 ㅋㅋ
반대로 아시안, 특히 한국과 일본 사람들은 늘 정답만을 요구받아왔다. 물론 학급 인원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영향이 크겠지만 이들은 언제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회구조 속에서 자란다. 그리고 그 경쟁에서 이기려면 정답을 맞춰야 했다. 손들고 발표하기 위해선 정답을 정확히 알아야만 했던 거다. 여기에 일본인들은 한 술 더 떠 절대로 남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건 나약한 사람이다라는 문화 때문에 미국인과 비교할 때 리액션이 뭐.. 거의 없는 수준이다. 또 하나. 이건 내 생각인데 언어의 특징도 있을 것 같다. 영어는 말을 할 때 40개가 넘는 입 주변 근육을 이용해야 발화가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어는 단 7개의 근육만이 사용된다. 그러니 리액션도 당연히 작아지지 않을까? ㅋ
이런건 직장 인터뷰를 할 때도 잘 드러나는데 일단 미국애들은 자기 다 할 줄 안다고 일단 지른다. 하지만 막상 일 시켜보면 맹탕일 때가 종종 있는데 반대로 일본인이나 한국인들은 일단 겸손이 미덕이다. 그래서 자기PR이 너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단다.
개인적으로는 두 문화가 적절히 섞이는게 가장 좋을 것 같다. 기자질을 10년 넘게 하다보니 일단 말만 번드르르하게 잘 하는 사람치고 속도 꽉 차있는 사람을 많이 못봐서 그런가...미국인들의 허세끼(?)가 한국이나 일본인들의 엄근진스러움과 섞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다.
예전에 일본여행을 갔을 때 가이드가 미국 캐릭터 미키마우스와 일본 캐릭터 헬로키티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뭐냐고 물어왔다. 정답은 '입의 크기'였다. 얼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할 정도로 아주 큰 입을 자랑하는 미키마우스에 반해 헬로키티는 입인지 코인지 알 수 없는 작은 점 정도만 있을 뿐이다. 입이 없다고 보는 의견도 있단다. 이는 각 문화의 특징을 아주 잘 말해주는 특징이라는 것이다. 자기 감정을 입 밖에 내지 말라는 일본과 과도한 리액션의 나라 미국 ㅋㅋ 그러고보면 아주 절묘한 해석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