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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양 Sep 29. 2024

이제 그만 먹어도 되겠니, 병아리 주먹밥

요리를 잘 못하지만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가끔 생기는데 병아리 주먹밥이 그러했다. SNS에서 푸드 인플루언서가 만드는 영상을 보는데 아이랑 하기에도 재미있어 보이고, 대충 해도 귀여운 모양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 오늘 저녁은 바로 이거야!


먼저 동글동글 병아리 얼굴을 만들어 줄 주먹밥을 만들고, 그 위에 옥수수 두 알로 입술, 깨로 눈을 만들어준다. 약국에서 매번 주는 작은 물약병에 케첩을 넣고 볼터치 살짝 해주면 귀여운 병아리 완성. 아이가 직접 병아리 얼굴을 꾸밀 수 있게 해 주면 좋아한다. 그리고 기름을 두르고 달군 프라이팬에 계란물을 넓게 펼쳐주고 그 위에 병아리 주먹밥을 올려준다. 다 익기 전에 스푼이나 뒤집개로 계란물을 스윽스윽 병아리 주먹밥 쪽으로 밀어주면서 약간의 올록볼록한 물결 모양을 만들어준다. 계란이 다 익으면 넓적한 그릇에 옮겨 담고 케첩을 휘휘 둘러준 후 그 위에 파슬리 가루를 뿌려서 초원 느낌을 살려 주면 끝나는 매우 간단한 요리이다.


주먹밥을 만들 때 김밥 밥을 만들 듯 소금간과 참기름을 해주어 맛을 좀 내주는 게 좋겠다. 집에 옥수수가 없어서 삶은 계란 노른자로 입술을 만들기도 했다.


곧 5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는 우리 집 아이는 더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 함께 간단한 요리를 하곤 해서인지 아주 익숙하게 요리에 참여를 했다. 게다가 직접 병아리 얼굴을 만드는 자신의 모습이 뿌듯하기도 한 모양이다. 특히 약병을 쭈욱 짜서 케첩으로 얼굴을 만들어 주는 일을 대단하게 여기는 눈치이다. 4일 연속 저녁마다 병아리 주먹밥을 만들겠다고 해서 엄마를 무척 편하게 해 주었다. 다른 반찬 준비하는 것에 비해 간단했던 병아리 주먹밥이었기에 사실 또 만들겠다고 할 때마다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는 것은 남편에게 비밀이다.


맛 내기에 영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잘 안 먹는 아이라며 대충 밥을 줄 수 없는 때에 가끔 SNS에 나오는 간단 요리, 한 그릇 요리 등을 따라 하곤 한다. 하지만 역시 그만큼의 비주얼은 나오지 않고, 맛은 오묘하게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그럴 때면 내심 더 조마조마해진다. 오늘은 더 안 먹으면 어떡하지, 나도 먹기 싫은데 애한테 줘도 되는 걸까. 심보 고약한 엄마가 된 기분이 들 때도 있고, 때로는 미안하기도 하다.


어릴 때는 먹성 좋았던 아이가 커가면서 점점 밥 먹는 것에 흥미를 잃어갔다. 결국 엄마인 내가 밥상을 제대로 차려주지 못함에 대한 결과인가 싶어 자책감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이가 매일 찾는 메뉴가 생기는 것이 참으로 반갑다. 비록 탄단지를 다 지켜주지는 못하겠지만 뭐라도 먹어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게다가 병아리 주먹밥은 모양도 귀엽고 -내가 만든 주먹밥이 SNS 비주얼은 아니지만- 아이가 직접 요리 과정에 참여한다는 좋은 의미까지 담고 있다고 자부해 본다. 여러모로 병아리 주먹밥은 성공적이다.


물론 남은 주먹밥 처리는 엄마 몫인지라 4일째 되니 계란이 슬슬 질리기 시작한다. 아들아, 내일까지만 더 먹고 당분간 병아리 주먹밥은 안녕 하자, 하하하!





병아리주먹밥 레시피

https://www.instagram.com/reel/C6uv_fZxJyr/?utm_source=ig_web_copy_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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