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전복 8개를 사 왔다. 냉동실에 잘 얼렸다가 일요일 저녁에 전복밥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틈을 타 해동된 전복을 손질했다. 처음 손질해 보는 전복의 비린내에 영 코가 불편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전복밥을 안쳐놓고 글을 써본다.
나의 고향은 완도인데 친가 어르신들이 전복 관련 업에 종사하고 계셔서 전복은 원 없이 먹고 커왔다. 4년 반을 산 우리 아이 역시 생선보다 전복이 익숙할 정도로 자주 접하는 해산물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손으로 전복을 손질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서울 출신이지만 바다 관련한 일을 하는 남편이 도맡아 하는 덕이다. 그렇다고 해양 생물과 관련 있는 직업은 아니지만 그냥 우겨 본다.
우선 전복을 깨끗하게 씻는 것이 중요하다. 주변에 까맣게 낀 전복 물때 등을 제거해 주는 것이 좋다. 요즘은 전복 손질용 솔이 나왔다며 친정 엄마가 주어 손쉽게 닦고 뒤에 붙어있는 칼로 껍질 분리까지 할 수 있었다. 껍질에서 떼어내며 몇 개는 내장이 터졌고 몇 개는 온전히 잘 뗄 수 있었다. 초보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어차피 냉동했던 전복인터라 내장은 다 버릴 것이다. 이후 다시 한번 전복을 깨끗하게 씻어주고 내장은 모두 분리해 준다. 이제부터 어려운 과제가 있는데 바로 전복의 이빨을 제거하는 것이다. 먹을 수 없거니와 날카로워서 손질 과정에서 빼주는 것이 좋은데 이빨에 붙어있는 기다란 식도를 같이 제거하는 것이 좋단다. 어찌 된 일인지 내가 빼낸 이빨에는 식도가 붙어있는 게 하나뿐인데, 어디엔가 떨어졌을 것이라 믿고 넘어가 본다.
전복을 먹기 좋게 썰고 예전에 남편이 손질해서 얼려두었던 내장을 해동하여 미리 불려놓은 쌀과 볶아주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참기름이 아니라 버터를 넣고 볶아주어 풍미를 더해 보았다. 어느 정도 내장에 버터향이 입혀지면 쌀을 넣어 같이 볶아준다. 쌀알이 투명해지면 비로소 썰어두었던 전복을 넣어 냄비에 불을 올리기 시작한다.
사실 전복을 손질했던 이유가 있었다. 남편이 없고 아이가 잠든 이 순간의 적막이 견디기 힘들었다. 우울감이 몰려왔다. 그 이유도 있다. 다음 주 화요일 문화센터 강의가 잡혀있는데 폐강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채 마트 휴무일을 맞이하고 말았다. 개강이 확실시되면 교안을 만들려고 미뤄두었다가 내 꾀에 된통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불안감과 실망감이 우울감으로 찾아들었다.
지난해부터 부모 교육을 새로이 시작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번 학기 들어 개강이 거의 되지를 않았다. 그러다 보니 교안 제작을 미루고 미루어 폐강 때 안도의 한숨을 쉬는 일이 잦아졌다. 개강과 폐강의 기로에 선 순간을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제풀에 지쳐 교안 만들기를 포기하고 만 것이다. 미리 개강 여부를 확인하면 그나마 나은데 오늘처럼 문화센터 휴무일에 걸려 기한이 촉박해지면 어김없이 불안감이 커지고 만다. 알면서도 도통 올라오지 않는 일에 대한 의욕을 우울증의 끝물 탓이라고 핑계 대 본다.
독서실에 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맛있는 냄새가 난다며 부엌을 한 바퀴 둘러보는 그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오른다. 내가 스스로 전복을 손질했다는 것에 웃음이 설핏 난 모양이다. 이제 아이를 깨우러 가야겠다. 맛있는 전복밥을 먹고 나면 기운이 좀 나겠지. 마음의 기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