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이유식을 시작했다. 엄마젖을 먹다, 분유를 먹었던 작은 아기에게 세상의 맛을 보여준다니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이유식 준비물을 혼수 마련하듯 준비하고 유기농 식재료를 구매했다. 그리고 첫 시작일은 남편이 쉬는 주말로 잡았다. 아기의 첫 이유식을 엄마 아빠 모두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혼자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배고픈 아기는 우유가 들어오지 않으니 울고불고 난리가 났고, 초보 엄마는 턱받이를 채우는 것도 깜빡 잊은 채 손을 떨며 입 속으로 쌀미음을 밀어 넣었다. 아빠가 아기를 붙들고 있지 않았으면 이유식 먹이기에 대실패 한 엄마는 울고 말았으리라.
그렇게 시작했던 이유식은 점점 다양한 재료를 넣어 먹일 수 있게 되었고, 돌 무렵에는 밥 다운 밥을 먹게 되었다. 유독 야채를 좋아했던 아이에게 구운 당근, 데친 브로콜리가 단골 반찬이었고, 간식으로 가지 피자를 만들어 주곤 했다. 사실 가지를 사서 요리해 본 적이 처음이었다. 물컹하고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는 그저 맛없는 반찬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는 건강한 음식을 먹이겠다는 생각으로 무려 가지 피자를 먹였다. 맛은 어땠는지, 사실 자신이 없다. 나는 가지를 싫어한다며 먹지 않았다. 아이 반찬을 잘 먹지 않는 엄마, 그게 바로 나였다.
그런 내가 오늘 가지를 사서 구운 가지장을 한 번 만들어 보았다. 아이와 함께 먹기 좋아 보이는 누군가의 레시피를 어설프게 따라 해 보았다. 가지를 사서 먹기 좋은 크기로 이리저리 자르고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살짝 구워준다. 소금도 뿌려준다. 잘 구워진 가지는 반찬통에 넣어두고 양념장을 만든다. 간장, 올리고당, 다진 마늘, 식초를 넣고 소금도 조금 톡톡 뿌려준다. 물도 적당히 넣어준 후 전자레인지에 1분 정도 윙 돌려준다. 그렇게 만들어진 양념장을 가지가 담긴 반찬통에 자작하게 넣어주면 끝난다. 아직 간이 배이지 않았을 가지 몇 조각을 아이에게 잘라주고, 접시에 담아 남편에게도 내놓아 보았다.
늘 조미료를 아끼는군.
남편의 중얼거림과 함께 입에 넣어 맛을 보니 제법 괜찮았다. 맛있는 듯, 아닌 듯 하지만 그래도 손이 가긴 가는 그런 반찬 하나가 탄생했다. 아이 입에도 넣어주니 별말 없이 잘 먹는다. 성공이다.
밥을 잘 안 먹으려는 아이, 그리고 혼자 집에서 밥 먹는 것을 귀찮아하는 나. 그러다 보니 요리에 대한 의욕도 크지 않은 편이다. 나물 반찬은 그저 가게에서 사다 먹고, 아이가 더 어렸을 때에는 유기농 반찬집에서 배달시켜 먹곤 했다. 가끔 엄마가 보내주는 반찬이 오는 날은 제법 상차림이 화려해졌지만 그 날 뿐이었다. 육아효능감이 떨어지면서 우울감이 찾아왔고, 그때부터 모든 일에 의욕이 사라졌다. 그리고 산재해 있는 집안일을 보면 숨이 막혀왔다. 온갖 짐이 올라가 있는 식탁을 보면 한숨부터 나왔고, 그런 밥상에서 혼자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냉장고 문을 열면 보이는 오래된 반찬, 나는 먹고 싶지 않지만 아이 먹이려고 산 반찬들. 쌓여가는 반찬을 보며 더 우울해 지곤 했다. 한동안 밖에 나가 매일같이 쌀국수를 사 먹었던 기억이 난다. 신도시로 이사 오고 집 근처에 점심을 먹을 곳이라곤 쌀국수 가게뿐이었다. 언젠가 먹는 것을 좋아하냐는 육아 상담 중 들었던 질문이 떠올랐다. 그때는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비로소 알았다. 먹는 것을 좋아해서 혼자 잘 차려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육아하는 일상에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해 6개월 정도 약을 먹고, 가끔이지만 강의를 다시 시작하면서 우울증에서 벗어난 지 몇 달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 집 냉장고는 비어있을 때가 많다. 혼자 집에서 밥을 먹어야 할 때면 대체 무슨 반찬에 밥을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혼밥은 자신 있지만 집밥은 자신 없다. 오늘 만든 가지장이 며칠이나마 집밥의 어려움을 잠재워주기를 바라본다.
�구운 가지장 레시피
https://www.instagram.com/reel/C9Tfv6lMO42/?igsh=MTM5cjNrN3VyaGt2c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