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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양 Oct 04. 2024

<번외 편> 제법 베테랑 같지 않아?

요리를 주제로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요리를 못하는데 일단 글을 쓰려니 뭐라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냉장고 속 재료가 구비된 게 많지 않아 매일같이 마트를 가서 하나씩 두 개씩 집어 들고 오는데, 문제는 하나 만들고 남은 재료는 또 냉장고에서 발효 중이라는 사실.


얼마 전 새로 보게 된 <주부 육성중>이라는 웹툰에 이런 장면이 나왔다.

선배 주부인 할머니께서 "음식을 만들고 남은 재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냉장고에 자리는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초보 주부는 "뭔가 버리면 생길 것이다"라고 쉽게 답한다. 그런 초보 주부에게 선배 주부는 이렇게 말한다. "냉장고를 열고 남은 재료로 할 수 있는 요리를 찾아보라."라고. 나 역시 아직은 초보인터라 냉장고 속 재료로 하는 이른바 냉털 요리는 하지 못한 채 남은 재료를 발효 중이었던 것이다.


남편은 나에게 항상 발효 장인이라 부른다. 장을 잘 담근다는 말이면 참 좋으련만, 냉장고 속에서 재료들을 묵히고 썩힌다는 걸 발효라고 부르고 있다. 그 말을 들으면 전업 주부로서 부끄럽기도 하고, 나의 잘못을 끄집어 올린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빠질 때가 많았다. 그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정말 귀여운 표현 아니냐고 이야기한다. 핀잔주는 말이나 기분 나쁜 단어를 사용할 수도 있는데 장인이라고 표현해 주니 그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있겠냐고 한다.


사실 남편과 연애 시절에는 말을 참 예쁘게 한다고 생각했다. 역시 서울 남자는 다르군.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는 그게 아니라 여길 때가 많았다. 말 예쁘게 하던 사람이 아니라 그저 촌철살인 같은 말을 하는데 사랑의 콩깍지 덕에 그리 여겼던 것이라 생각되는 순간이 참 많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어떤 말을 해도 고깝게 들리고, 무시하는 말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친구의 말을 듣고 돌이켜 보니, 마뜩지 않는 순간에도 둘러 표현하려 애썼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제법 웃으며 받아칠 수 있는 남편의 진담 같은 농담들이 늘어 갔다.


또 하나, 남편이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번에도 소스를 아꼈군.


늘 간이 묘하게 덜 된 듯한 내 요리를 평가할 때 하는 말인데, 처음에는 삼삼하게 먹는 게 좋은 거라 항변했지만, 요리를 거듭해 보니 알겠다. 아, 나는 간을 참 못하는 사람이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있고 저염 식단이 필요하다 우겨본다.


휴일이 거듭되는 한 주, 무슨 요리로 또 밥상을 채워야 하는 것인가 근심이 가득하다. 어쩐 일인지 냉장고에 반찬통이 하나둘씩 늘어가는 중인데, 발효되지 않으려면 뭐라도 해봐야 할 것 같다. 요리의 고민이 점점 깊어져 가는 것이, 어쩜, 베테랑 주부가 되어가는 듯해서 흐뭇하기도 한, 이상 초보 주부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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