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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양 Oct 13. 2024

소꼬리찜까지 했단 말이다.

우연히 우아하게 생긴 엄마가 맛깔나게 고기를 먹는 SNS 게시물을 보았다. 가끔 들어가서 보곤 하는데 굽기도 참 맛있게 굽고, 선 채 바로 입에 넣어 먹는 모습에 나까지 침을 꿀꺽 삼키게 된다. 창고형 마트에서 고기 사다 먹는 집인 것도 대단했고, 그렇게 고기를 잘 아는 것도 신기했다. 연애 시절 방문했던 구 남친, 현 남편의 집에서 환기시스템을 보게 되고 결혼을 결심(?)했다는 그녀의 이야기도 참 재미있었다. 구워 먹는 고기는 맛있지만 여전히 안심보다 차돌박이가, 소고기보다 돼지고기가 맛있는 나는 집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고기를 구워 먹는 사람들의 요리 일상이 신기하고 궁금하다.


아이가 구운 고기를 씹어서 먹게 된 그날부터 친정 엄마는 늘 고기를 잘 먹어야 된다, 키 크고 덩치 좋은 애들 있는 집 보면 그렇게 고기를 구워서 먹이더라 같은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키가 그리 크지 않은 친가 식구들 중 사촌 동생 한 명이 190cm가 다 되어 가는데 명절 때 보면 항상 큰엄마가 고기를 따로 구워서 먹이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남동생 친구들 중 키가 큰 아이들도 보면 어려서부터 육회도 먹이고, 매일매일 고기를 그렇게 먹이더란다. 우리 부부의 작은 키가 걱정스러웠는지 나보다 훨씬 키가 큰 친정 엄마는 늘 고기 잔소리를 끊임없이 한다.


자연스레 어떻게든 고기를 먹이고 싶은 마음이 늘 자리하고 있긴 하다. 어느 날은 고기 좋아하는 엄마의 SNS에 올라온 소꼬리찜을 보고 바로 이거야 하며 나도 모르게 홀린 듯 소꼬리를 사고 말았다. 쫀득한 식감이라 재미있어하며 먹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더해 대단히 거창해 보이는 요리를 내놓고 웃고 있을 내 모습이 상상이 되니 어떻게든 만들어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소꼬리는 충분히 핏물을 빼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러 차례 물을 갈아주며 핏물 제거를 먼저 하고 이후 5분 정도 데치듯 삶는다. 흐르는 물에 잘 씻어 불순물을 제거해 준다. 이후 압력솥에 데친 소꼬리를 넣고 양파, 대파를 같이 넣어준다. 통후추나 월계수잎 등이 있는 분들은 같이 넣으셔도 좋다. 고기가 잠길 정도로 물을 넣고 뚜껑을 덮는다. 우리 집 가스레인지는 화력이 센 편이라 강불로 20분 정도 지나니 벌써 추가 빠르게 돌아갔는데 이때 중불로 줄여서 또 15분 정도 유지해 주고 불을 껐다. 혹시 탈까 봐 걱정되어 조금 일찍 불을 껐는데 뼈에서 부드럽게 고기가 떨어지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혹시 다음에 또 만들게 되면 중불에서 20분 이상 유지해주려 한다.


이렇게 고기가 익어가는 동안 양념장을 만들면 되는데 쉽게 구할 수 있는 참소스를 많이들 활용 한다. 참소스에 식초, 참기름, 고춧가루를 적당히 넣어주면 된다. 마지막으로 고기 삶을 때 나왔던 육수를 같이 넣어준다. 참소스가 없어 불고기 양념장으로 하고 식초를 조금 더 넣어주었더니 새콤한 느낌의 양념장이 만들어졌다.


다 익은 소꼬리를 건져내어 적당한 크기로 자른 부추를 듬뿍 올려주고 만들어놓은 양념장을 충분히 부어준다. 비주얼도 멋진 소꼬리찜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아이 먹이랴, 뼈 바르랴 정신없는 와중에 사진을 하나도 남기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로 소꼬리찜은 들어간 노력 대비 무척 맛있었다. 새콤한 양념장에 국수까지 말아먹으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아이는 잘 먹지 않았다. 쫀득한 식감도 씹기 어려웠고, 향 나는 부추도 싫다고 했다. 요즘 냄새에 예민해져서인지 식초 냄새에 코를 막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속이 답답해졌다. 탄산수를 꺼내 들고 들이키고 있으려니 옆에서 남편이 말한다.


"이렇게 대단한 요리를 해냈다고? OO아, 엄마가 우리를 위해서 열심히 요리했대. 정말 멋지지?"


내 만족을 위한 요리였나 보다. 가족들을 눈치 보게 만들고 말았다는 자책감이 들어서 입맛이 떨어졌다. 충분히 삶지 않아 뼈에서 잘 발라지지 않는 고기 탓을 했다. 그래서 먹지 않나 보다고. 다음에는 조금 더 익혀야겠다고 말하는 내 마음도 아직은 익힘의 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아이의 밥투정에 더 의연해질 수 있는 그 마음의 익힘 말이다.


소꼬리찜을 했다고 하니 주변에서 이야기했다. 안 먹는 아이를 키우다 보니 별별 요리를 다 하게 되었느냐고. 글쎄, 그런 셈이지 라는 답으로 마무리 지었다. ‘아이 생각이 아니라 오롯이 내 만족이었는데 다들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아. 그래서 사실 속상해’라고 덧붙이지는 못했다.




소꼬리찜 레시피 참고

https://www.instagram.com/reel/C-cOPAQJ9vj/?igsh=dTR5b3J5dGdxcH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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