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메뉴에 꽂히면 3번은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아들을 두고 있다는 것은 꽤 편한 일이다. 한 번 냉장고 안에 들어가면 다시 먹지 않으려는 것에 비하면 꽤 복 받은 것인데, 문제는 이 꽂히는 메뉴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라는 것. 지난 병아리 주먹밥처럼 대단히 열광하는 요리가 흔히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다 이번에 또 하나 찾았다. 노랑노랑 고구마 카레. 감자가 아닌 고구마를 넣었더니 달큼한 맛이 강해 카레를 좋아하지 않는 나도 꽤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주로 고형 카레를 사용한다. 맛이 진하고 버터와 잘 어우러져 가루 카레에 비해 풍미가 좋은 듯하다. 먼저 버터와 기름을 두른 팬에 양파를 달달 볶아주다 한 입 크기로 썰어놓은 당근, 고구마를 볶아준다.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카레용 고기를 넣고 한 번 더 볶아준다. 느타리 버섯을 추가하는 것도 좋다. 이후 물 500ml에 고형카레 두 조각을 함께 넣어주고 팔팔 끓이면 끝난다. 고기 불순물 등이 올라올 수 있으니 걷어내 준다. 잘 저어주며 카레 점도를 조절하면 된다.
고등학생 시절, 급식으로 카레가 참 많이도 나왔더란다. 아니 정말 그렇게나 자주 나올 일인가 싶을 정도로 카레 아니면 하이라이스가 주메뉴였던 우리 고등학교 급식. 업체 이름은 분명 엄마의 사랑이 들어간 곳인데, 어쩜 그리도 사랑이 카레에만 쏠렸나 싶을 정도였다. 하긴 엄마가 되고 보니 카레는 참으로 편하고 좋은 메뉴라 엄마들이 사랑할 만하기도 하다. 다른 반찬도 필요 없고, 야채를 듬뿍 먹일 수도 있고, 며칠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메뉴라 엄마 사랑을 독차지하는 메뉴이기는 하다.
고등학생 시절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터라 카레를 떠올려도 그다지 좋은 감정이 함께 올라오지는 않았다. 3학년 때 급식부장을 도맡아 했다. 급식비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다른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급식비를 담당하는 부장이 되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급식차를 복도 끝에서부터 끌고 오고, 국통에서 국을 퍼담아 주는 일도 급식 부장의 주요 업무였다. 청소할 거리가 많은 국통 선반을 옆반에 더 가깝게 놓기 위한 급식부장들의 기싸움이 대단했던 그 시절. 도와주는 친구들이 많지 않아 고군분투했다. 혼자 급식을 먹을 정도로 친구가 없던 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친구들 사이를 겉돌았던 그런 시절이었다. 어쩌면 급식비 지원을 받는 급식부장이라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방어 기제가 그리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어째서인지 성인이 되어서도 급식에 너무 많이 나오던 카레를 좋아하지 않았고, 결혼 후 아이에게도 자주 만들어주지 않는 편이기도 했다. 감자를 먹으면 어김없이 변비에 걸리는 아이였던 터라 핑계도 참으로 좋았다.
어느 날 냉장고를 여는데 카레가 아닌 다른 요리를 떠올리기 어려울 식재료가 갖춰져 있었다. 당근과 양파, 고기, 그리고 감자가 아닌 고구마. 아이와 함께 마트에 가서 홀린 듯 고형 카레를 한 번 사봤다. 집에 돌아와 고구마를 넣고 카레를 만들어 보았다. 양파에 이어 고구마까지 들어가니 입 안 가득 단 맛이 가득 돌기 시작했다. 아이도 나도 뚝딱 한 그릇을 다 먹었다. 순식간에 비어버린 밥그릇을 들고 아이가 외친다. 엄마 내일도 카레 먹을래!
찾았다. 별따기 메뉴!
카레에 대한 내 마음도 달짝지근해지기 시작했다.
국통으로 기싸움하던 급식부장을 도와주던 그 친구들은 카레를 좋아할까? 그때 나를 좋아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