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이 친구집에 초대받아 갔는데 아주 맛있는 돼지고기 요리를 주었다. 짭조름한 맛에 밥도둑이 따로 없어서 무슨 고기로 했느냐, 어떻게 양념했느냐 꼬치꼬치 캐물었더니 하는 말, "그거 시판 양념으로 한 거야, 역시 맛있지?"라는 반전 대답이 돌아왔다. 집밥 대접하는 게 취미인 양 뚝딱뚝딱 요리를 만들어내는 엄마인데 시판 양념도 참으로 잘 쓴다. 적당히 양념맛을 낼 줄 아니 오히려 다양한 양념장을 사용하는 것에 더 자유로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이를 낳은 이후 시판 양념에 대한 불신에 사로잡혀 어떻게든 첨가물 적고, 조미료 같지 않는 조미료를 찾아내려 용을 썼던 사람이다. 그렇게 고르고 고른 양념장도 최소한의 양만 사용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재료 본연의 맛은 숨겨지지 않고, 조화를 이루지 못한 맛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전에도 말했듯 간을 잘 맞추지 못하는데 무슨 호기로 그렇게 시판 양념을 멀리 했나 싶다.
역시 이번에도 시판 양념 없이 해내보기로 했다.
돼지고기 목살을 사서 간장, 올리고당을 넣고 아이 배도라지 음료 한 팩을 함께 넣어 한참 재워두었다. 마침 호박과 양파가 있어 함께 넣었다. 15-20분 정도 재워둔 고기를 달궈진 팬에 넣고 볶아주었다. 돼지고기이니 잘 익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게 완성된 돼지고기 요리. 어쩐지 또 맛이 심심하다. 아니 이맛도 저 맛도 아닌 느낌이랄까. 배도라지의 단맛이 묘하게 감돌지만 양념이 잘 된 느낌은 아닌 것이 역시 실패다. 결국 꺼내 들고 말았다. 시판 갈비 양념장. 그나마도 국산에 무농약, 유기농 재료가 들어간 시판 양념을 고르고 골라 샀던 갈비 양념장이었다. 콸콸 부어서 다시 고기를 볶고 나니 그제야 맛이 난다. 울고 싶기도, 웃기기도 한순간이다.
양념장에 대한 불신처럼 때로는 과하게 신경을 쓰다가 어느 순간 이도저도 아니게 만들어버리는 일들이 참 많다. 아이의 양육도 그렇다. 두 돌 무렵까지 책육아하는 엄마라는 타이틀에 과하게 몰입을 했었다. 연계독서랍시고 비슷한 주제의 책들 모아서 아이 동선에 맞춰 책을 배열해 두었다. 코로나 시국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던 터라 바깥 활동이 늘 아쉬웠다. 그래서 가을이면 아이 낮잠 자는 틈을 타 낙엽을 주워와 다람쥐를 만들어 놓기도 하고, 겨울이면 눈을 퍼와 눈사람을 만들어 보여주기도 했다. 그 순간에도 그림책이 항상 옆에 있었다. 동물원에 가는 날은 낱말 카드를 들고 가 함께 보여주었다.
이렇게 몰입하여 책육아를 하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더 이상 책을 들일 공간은 없었고, 비싼 전집을 계속 살 수도 없었다. 저렴하게 당근이나 핫딜로 구매한 책을 아이가 잘 보지 않으면 비싼 전집을 사주지 못한 내 모습이 초라해지기도 했다. 아이의 생떼가 폭발하기 시작한 그 시절에는 책육아고 뭐고 내 정신줄을 잡기 바쁜 나날이 찾아왔다. 소리 지르는 내 모습에 내가 놀라 결국 병원을 찾았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책육아는 멀어지고 시판 양념처럼 쓰면 편하지만 자꾸 쓰면 마음 한편이 찝찝한 그런 육아를 하기 시작했다.
육아에 답은 없다지만 시판 양념장을 사용하는 것처럼 편하고 찝찝한 그런 육아는 분명 존재한다. 영상 잔뜩 보여주고 재우고 나면 후회하는 그런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그저 그런 육아, 나는 그런 육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