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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양 Oct 27. 2024

장염에 젤리 꼭 먹어야겠니

며칠 전부터 살짝 무른 변을 보던 아이가 주룩주룩 설사를 시작했다. 응가 기저귀를 뗀 지 얼마 되지 않아 밖에서는 화장실 가는 것도 잘하지 않는 아이가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을 들락거리니 안 되겠다 싶어 병원을 방문했다. 심하지는 않은데 장염 바이러스가 들어온 모양이라며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 주 주말, 아이가 좋아하는 이모가 왔는데도 짜증을 내고 계속 잠만 잤다. 그날 밤 38.5도까지 열이 올랐다. 다음날 그간 먹었던 약봉지를 챙겨 들고 다른 병원에 들렀다. 코 때문에 오랜 기간 먹은 항생제가 말썽이었다. 수액을 맞고 엑스레이를 찍었고 결과는 입원이었다.


아이가 18개월 무렵 폐렴으로 어린이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코로나 시국임에도 잘 관리되지 않았던 병동 간호사실의 근무 태만으로 아이손이 딱딱해질 정도로 퉁퉁 부어올랐고, 보건소에 차트 허위 작성 등으로 병원을 고발하기까지 했었다. 그 이후 가급적 입원을 피하려고 늘 노력해 왔던 편인데 입원을 권하는 말에 벌써부터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더 조심스럽고 불안한 마음이 가득이었다. 다행히 이번에 입원한 병원은 병동 간호사 선생님 수도 많고 중간중간 회진 시 꼭 링거 맞는 아이 손과 팔을 확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불안감을 내려놓고 무사히 퇴원을 맞이했다.


아이는 입원 기간 내내 유난히 젤리를 찾았다. 증세가 심하지 않아 금식을 하거나, 죽을 먹어야 하는 등 식이 제한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장염 끝에 먹어도 되는 것인지 여간 고민되는 것이 아니었다. 퇴원하면 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는 해야 할 텐데 싶어 이리저리 인터넷을 뒤지다 유기농 젤리를 사보았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한천 가루를 샀다. 양갱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한천, 아기 시절 간식을 만들어주던 열정육아의 시기 이후 처음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젤리 식감을 위해서는 젤라틴을 사용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시중에 판매하는 제품은 대다수 동물성 단백질이다. 가급적 장염 뒤끝에는 사용하지 않고 싶었고, 대체 물질로 선택한 것이 한천이었다. 한천은 우뭇가사리 같은 해조류에서 추출한 것인데 식이섬유가 풍부하다 하니 장염에도 쬐애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구매해 보았다.


아기주스에 한천가루를 일정 비율 섞어가며 끓여주면 되는데 젤리보다는 양갱과 같은 식감이다. 아기주스 1팩에 냉동 딸기 으깬 것, 블루베리 등을 함께 넣어주었고 어른 숟가락으로 한 스푼 한천 가루를 넣어주었다. 처음에는 뜨거운 물에 풀어주었다가 냉동실에서 식혀주었더니 녹으면서 다시 물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가루를 풀어주면서 끓였고, 이후 실온에서 식혀주었더니 제법 젤리 같은 모양새가 나왔다. 손에 묻는 것 없이 탱글 해 보이지만, 식감은 역시 젤리보다는 양갱이다. 식감 탓인지, 아니면 설탕이 덜 들어가서인지 한 번 먹고는 엄마 먹으라고 양보해 준다.


아이는 자란다.

9개월 무렵 처음 전분 가루로 젤리 흉내를 냈던 간식을 허겁지겁 받아먹던 아이는 이제 주스로 만든 한천 젤리도 거부할 만큼 입맛이 변했다. 거부하는 말 대신 엄마에게 양보하는 척하는 꼼수도 부릴 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아기라고 불러주는 것을 좋아하지만 고집만큼은 어른의 그것보다 더하다 싶을 정도로 자라고 있다. 주삿바늘에 퉁퉁 부어오르던 18개월의 작은 손은, 이제 굵은 수액 바늘을 거뜬히 이겨낼 만큼의 단단한 손이 되어 가고 있다. 때로는 그 속도를 엄마가 미처 따라가지 못해 부딪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졌다. 여전히 아기처럼 대하려다 보니 부딪히고 서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마는 것은 아닌지. 자아가 형성되어 가는 그 과정을 못내 불안한 마음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엄마의 불안감이 아이의 성장을 방해하고는 있지 않았나 젤리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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