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얼양 Oct 27. 2024

<에필로그> 생일상 차리기

짝짝짝!

지금까지 요리는 초보인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도 지금까지 연재되었던 글을 쭉 보신 분들은 대체 왜 초보 주부가 아니라는 것일까 꽤 궁금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요리만 초보라기엔 여간 미숙한 점이 많아 보이는데 대체 몇 년 차 주부이길래 저리 썼을까 싶었을지도 모른다. 무려 7년 차. 1년의 신혼, 9개월의 임신 기간, 그리고 육아를 하고 있는 지금까지의 기간을 합치니 대략 7년이라는 시간이 나왔다. 그 긴 시간 동안 늘어난 것이라곤 흰머리와 두툼해진 살이 전부가 아닐까.


그럼에도 꼬박꼬박 매년 꾸준히 하는 요리 중 하나가 남편의 생일상 차리기이다. 도통 늘지 않은 요리 실력임에도 이것저것 한꺼번에 서너 가지 요리를 해대는 날은 아마 남편의 생일이 유일할 것이다. 남편을 위해, 때로는 시어머니에게 당신의 아들 생일 잘 챙겨주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차리는 상이다.


매년 메인 요리를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데 올해는 일찌감치 동태 슬라이스를 사두었다. 아이와 함께 먹기에도 좋고, 손이 간 느낌을 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냉동실에서 잠들고 있던 동태 슬라이스를 드디어 해동하기 시작했다.


해동된 동태 슬라이스는 소금물에 15분 정도 담가준다. 그리고 다시 꺼내어 키친타월로 물기를 제거한다. 쟁반에는 밀가루나 부침 가루를, 볼에는 계란물을 풀고 팬을 예열해 준다. 기름을 넉넉히 두른 팬이 달궈지는 동안 동태 전에 밀가루를 묻혀준다. 그리고 계란옷을 입히고 달궈진 팬에 넣어준다. 노릇노릇 앞뒤로 잘 익혀주면 끝이 난다. 과정만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아니다. 달궈진 팬을 유지한 채 재빠르게 밀가루와 계란옷을 입히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왜 명절에 전을 부칠 때 삼삼오오 모여서 하는지 이해가 갔다.


그렇게 전을 부치는 동안, 미리 끓여놓았던 미역국을 데우고 나니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되어 갔다. 잡채를 볶고 나니 케이크를 사러 나간 아이와 남편이 돌아왔다. 마음이 더 급해졌다. 불고기를 재워두고 아직 볶지를 못한 상황이었다. 얼른 미역국을 데우던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 불고기를 볶고 나니 제법 요리의 달인이 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상차림은 꽤 초라했다. 동태전은 메인이라기보다 곁다리에 불가했고 모양새가 잘 살지 못했던 잡채와 불고기는 왠지 초라해 보였다. 그래도 맛있다고 해주니 다행이다 싶었다. 어떻게든 있어 보이게 사진을 찍어 시어머니에게도 전송을 완료했다. 이렇게 연중행사를 또 한 번 마무리 짓고 나니 안도감이 흘러나온다.


연재글을 쓰는 동안 연중행사가 빠르게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변변찮은 요리를 했던 주에는 마음이 조급해졌고, 뭐라도 만든 그날은 사진을 찍으며 빨리 연재일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글을 쓰니 엄마가 자꾸 부엌에 들어간다는 남편의 말에 이제 제법 요리 좀 하는 주부가 된 듯 해 흐뭇하기도 했다. 그렇게 써내려 간 요리 일지를 생일상을 마지막으로 잠시 중단하려 한다. 별다른 이유는 아니다. 또 다른 초보 주부의 일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조금 더 나를 위한 일상을 그려보고 싶다. 아니 어쩌면 소설을 하나 들고 올 지도 모르겠다. 소설인지, 현실인지 영 구분이 안 가는 그런 일상을 써내려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우울감이 찾아오지 않는 시간을 만들어 내고 싶다. 그렇게 글을 쓰며 마음 속 불안을 내려놓고, 즐거움을 찾아보려 한다.


더 즐거운 일상을 만들기 위해 쓴 요리 일지를 이렇게 마감한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 본다. 감사합니다.

이전 09화 장염에 젤리 꼭 먹어야겠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