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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재 Apr 02. 2022

그 빵집은 아직 거기 있을까

이젠 천천히 달려도 괜찮지 않을까, 난 너무 빨리 달려서 놓친 게 많은데


Anny Chen /behance



저번 주부터 다시 복싱을 다니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니 어색하고 힘들었지만 타격감이 주는 유쾌함과 시원함이 있었다. 운동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내리면 항상 있는 동네 빵집. 다른 건 생각도 나지 않는데 어느 순간부터 계속 빵집 안 냉장 케이스에 들어있는 샐러드 빵이 신경 쓰인다.

바삭바삭하게 튀긴 빵의 가운데를 갈라 양배추 샐러드를 가득 채워 요리조리 케첩을 뿌린 샐러드 빵. 그냥 무조건 맛있을 수밖에 없는 맛. 저번 주에는 참고 지나갔지만 오늘은 꼭 사 먹으리라.

내 첫 샐러드 빵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다. 우리 집 앞엔 대형 병원이 있었는데, 병원 1층에 도넛 집이 생겼었다. 가게 이름엔 도넛이 들어갔는데, 가게 안은 도넛뿐만 아니라 다양한 빵들도 팔았었다. 새로 생긴 가게답게 흰색 바탕에 깔끔한 진열은 새로운 손님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오픈했을 당시 사람이 많아 난 항상 바쁜 가게의 모습을 보며 집으로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오픈빨은 일주일이라고 했던가, 그 빵집은 서서히 한가해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가게에 들어가 구경하던 게 취미인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무턱대고 들어갔었다. 가게는 생각보다 좁았고 사장님과의 거리가 가까워서 무엇이라도 사야 할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 뛰어난 마케팅이다. 이름은.. 시선 마케팅?

그때 부랴부랴 집었었던 것이 바로 샐러드 빵이었다. 천 원을 내고 이백원을 거슬러 받던 정겨운 가격의 샐러드 빵.

손에 들고 한 입, 한 입 먹으며 집으로 향했지만, 집에 도착하기 전 다 먹곤 빵집으로 돌아가 하나 사서 집으로 들어왔다. 

그 이후 나는 입이 심심하면 그 집에 찾아가 샐러드 빵을 사 먹었다. 사장님은 30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는데 샐러드 빵을 사 가는 초딩이 귀여웠는지 가끔 단팥이 든 동그란 찹쌀도넛을 주곤 했다. 이게 단골의 묘미인가? 그런 서비스를 받기 시작하니 용돈은 모두 샐러드빵에 올인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더 크고 두꺼운 것을 고르려 빵이 담긴 트레이를 열심히 쳐다봤으나 후반엔 그냥 맨 앞에 것을 골랐다. 조금 더 큰 것보다 더 빨리 먹는 게 이득이라는 것을 그때 알게됐다.

그렇게 그 빵집은 2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고 샐러드 빵은 치솟는 물가에 따라 800원에서 1200으로 인상되었다. 내가 그 샐러드 빵에 투자했으면 33%의 수익이었을 텐데.. 가격도 오르고 너무 많이 먹어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빵집으로 새지 않고 집으로 곧장 하교하기 시작했다. 20대 후반에 그때 그 빵이 이렇게 그리울 줄 알았으면 더 먹어둘걸...

복싱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샐러드 빵을 사려고 결심하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빵집 아직 거기 있을까?'

나는 파리에 대한 환상이 없다. 주변 친구들이 내 환상을 조금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이 철저히 짓밟아줬기 때문이다. 거리는 얼마나 더럽고, 강에선 무슨 냄새가 나고, 사람들은 쌀쌀 맞고, 인종차별에, 에펠탑의 풍경은 사진으로만 봐도 충분하다고.

그러다 우연히 파리에 대한 유튜브를 봤다. '프랑스 파리는 낭만적이지만 그곳에 내가 있을땐 그다지 좋은 관광지는 아니다. 하지만 당신이 본 파리의 그 모습은 10년 뒤에도 그대로 일 것이다. 빨리 돌아가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느린 것은 프랑스 파리의 시간이니까. 다시 파리에 방문한다면 당신은 10년 전의 당신이 되어 여행을 할 것이다. 그래서 파리는 최고의 여행지다.'

굉장히 미화된 것 같지만 아무튼, 프랑스의 그런 느림이 부럽다. 이젠 천천히 달려도 괜찮지 않을까, 난 너무 빨리 달려서 놓친 게 많은 것 같은데.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의 유행도 그런 것 아닐까? 당장 찍히는 사진이 아니라 찍고 난 이후 며칠을 기다려 사진을 받았을 때 느끼는 그 감정이 그리운 거. 

코로나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긴 글렀지만 한번 그 빵집에 찾아가 봐야겠다. 오늘은 지금 집 앞 빵집의 샐러드 빵으로 만족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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