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으신가요? 저는 우울한 날 정처 없이 걸어 보기도 하고, 귀가 찢어질 것처럼 시끄러운 헤비메탈 음악을 들어보기도 했어요. 그러고 나면 가슴이 시원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거든요. 그래도 안 되면 흠뻑 땀에 젖도록 뛰어보기도 하고, 펑펑 울 수 있는 영화를 보기도 하고요. 이런저런 시도 끝에 제가 찾은 방법은 바로 글쓰기였습니다.
사실 내 언어로 A4 두 장 이상의 글을 써 본 것은 30대 중반이 되어서였습니다. 석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대학 때 리포트를 제출하고, 직장인이 되어 계획서나 보고서를 낸 적은 많았죠. 그렇지만 그런 글은 대부분 참고 서적을 요약하거나 정해진 형식에 맞추어 내용을 편집하면 되는 것들이었습니다. 내 생각과 의견이 하나도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작부터 확실한 목적이 정해진, 학점과 점수를 위한 글자들의 나열이었다고 보는 편이 솔직합니다. 그런데 논문을 쓰면서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것이 신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머릿속에 얽히고설켜 있던 생각들이 문장이 되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정말 신기했거든요. 평생 책, 영화, 드라마의 소비자로만 살아온 내가 한 권의 책으로 엮어진 내 이야기를 받아 든 것도 정말 진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비록 그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사람이 나와 지도교수님 딱 두 사람밖에 없을지라도 말이지요.
머릿속이 복잡했던 어느 날 벤치에 앉아 한참을 썼습니다. 종이도 컴퓨터도 없었던 탓에 핸드폰 메모장에 오타 투성이인 글을 쓰고, 읽고, 고치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고 나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어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가슴속 깊은 이야기가 그렇게 내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신기하게도 마음이 가라앉으며 그제야 벤치 앞에 펼쳐져 있던 바다 풍경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공터에 삼삼오오 오며 수다를 떨고 있던 여중생들의 웃음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고요.
글을 쓰면 머릿속을 무질서하게 둥둥 떠다니는 생각의 편린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들을 눈앞으로 끌어당겨 분류하고 글 속에 집어넣으면 비로소 생각이 됩니다. 어떤 때는 무작정 쓰다 보면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알아차릴 때도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다음입니다. 몇 차례 그 편린들을 걷어내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는 것입니다.
이유 없이 몸과 마음이 쳐지고 화가 나는 날이 있습니다. 사실 이유가 없지는 않지요. 분명 아주 사소한 문제들이거나 무의식 중에 나를 괴롭히는 거리가 있을 거예요. 그런 것들이 부지불식간에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며 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는 거겠지요. 그런 순간입니다. 글을 써 보세요. 이렇게 저렇게 끄적이다 보면 마음을 어지럽혀 우울하게 만드는 원인들이 종이 위로 하나 둘 내려앉게 될 겁니다. 걱정 마세요. 그다음 어떻게 해야 좋을지는 당신 손이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당장의 기분을 떨치기 위한 욕지거리던지, 복잡함 상황을 해결할 비책이던지 뭔가가 분명 써내려 져 갈 겁니다.
그리고 나면 샤워를 하세요. 우울은 수용성이고 분노는 지용성이니 우울하면 샤워를 하고 화가 치밀면 고기를 먹으라는 말이 있던데 정말 그럴지도 모릅니다. 우울한 기운은 물에 모두 떠내려가거든요. 샤워를 끝내고 나면 완전 다른 기분으로 거울 앞에 앉게 될 겁니다. 어쩌면 나를 정말 괴롭히는 건 우울함이 아니라 그 우울을 붙잡고 놓지 않는 나 자신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글을 통해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원인을 확인하고 물에 씻어 내려 보내세요. 그것이 정말 사소한 문젯거리라면 물줄기와 함께 사라질 것이고, 해결을 요하는 문제라면 본격적으로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우울한 기분으로 떨치고 가뿐한 오후를 보내는 데, 제 방법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