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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봄 Dec 25. 2020

이모, 그 특별한 관계의 따뜻함

  식당에서 주문을 하려는데, 그 식당이 국밥집이나 백반 집 같은 소박한 한식 식당일 때 아주머니를 뭐라고 부르시나요? 그냥 손을 번쩍 들고 눈 맞춤을 시도할 수도 있고, 여기요 하고 크게 외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부산에서는 다들 이모라고 불러요. 이모님도 아니고 그냥 이모하고요.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이모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아요. 타 지역에서 온 사람들만 어색함을 느낄 뿐이죠. 그런데 아무도 식당 아주머니를 고모라고는 부르지 않아요. 이모나 고모나 똑같이 삼촌관계의 친척인데 참 이상하죠. 어쩌면 밥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집에서 보통 밥 달라는 말을 엄마한테 하잖아요. 식당 아주머니께 엄마라고 말하기는 낯간지러우니 세상에서 엄마와 가장 닮았으면서 어떨 땐 엄마보다 더 편한 이모를 찾는 게 아닐까 합니다. 이모라는 단어에는 특별함이 있어요.       



  엄마는 남동생 하나에 여동생 셋을 둔 맏이세요. 그러니 제게는 엄마와 얼굴에 목소리까지 닮은 지원군이 셋이나 더 있는 셈입니다. 네 자매의 우애는 좀 유별난 면이 있는데 일단 만나는 횟수부터가 남달라요. 한 시간 반 정도면 닿을 수 있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살기는 하지만 별 것 아닌 일에도 일단 모이고 보거든요. 명절, 김장 같은 연중행사는 물론이고, 외할머니 댁에 가전제품을 바꾼다 던지, 쑥떡 만드는데 필요한 쑥을 뜯어야 하는 사소한 경우도 예외는 아닙니다. 모이기 위해 이유를 만드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니, 엄마도 이모들도 친구가 없어도 심심할 새가 없을 거예요. 



  자매들 사이가 그렇다 보니 조카인 저에게 이모들이 써주는 마음도 세 배로 푸근합니다. 물질적인 도움을 받아서가 아니에요. 풍족하지 않은 가정 형편이지만 이모들에게서 느껴지는 온기에는 엄마 향기가 있기 때문이지요. 큰 이모는 힘들게 사셔서 몸이 안 좋으세요. 그래도 오랜만에 아이들을 만나면 조금이라 미안하다며 꼭 1,2만원을 쥐어주고 가셔요. 아이들은 그 만원의 값어치를 모르겠지만 저는 알지요. 이모부를 먼저 보내고 혼자 계시는 둘째 이모는 엄마랑 얼굴도 성격도 완전 달라요. 그래도 저를 생각하는 마음은 똑같아서 아이들 챙겨 먹이느라 애쓴다고 양념 고기를 종류별로 사 오시지요. 엄마랑 목소리가 똑같아서 통화할 때 아빠가 몇 번이나 착각했다는 막내이모는 평생의 상담자예요. 한 번을 귀찮은 내색 없이 모든 하소연을 들어주고 답을 찾도록 기다려주는 분이거든요. 이모를 셋이나 둔 것만으로 이미 마음이 부자입니다.           



  그런데 제 아이들은 이모가 없어요. 어쩌다 보니 고모도 없어요. 삼촌 관계의 친척이라고는 큰아버지와 외삼촌이 전부입니다. 가끔은 이모도 고모도 없는 아이들이 짠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부모와 조부모에게 받는 사랑과는 또 다른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아예 없다고 생각하면 참 안타깝더라고요. 딸아이도 이모라는 아주 특별한 관계가 주는 따뜻함에 대해 이미 간파한 눈치예요. 나는 왜 이모가 없어? 엄마는 이모가 많아서 정말 좋겠다를 연발하지만 이번에는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네요. 너는 이모가 없으니까 엄마랑 두 배로 친하게 지내면 되겠네 가 위안이 되려나요?          



  참, 혹시 부산으로 여행을 가면 식당 아주머니를 이모라고 불러보는건 어떨까요? '이모' 두 글자 중 '이'에 강세를 두어 크게 부르면 아주머니가 더 반갑게 맞아줄 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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