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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봄 Jan 03. 2021

멋지게 노년을 보내는 법

  제 외할머니는 80대 중반을 막 넘기셨어요. 할머니는 5명의 아들·딸과 11명의 손주를 두셨는데 우리 모두는 할머니를 너무나 사랑합니다. 할머니들은 대게 손자들에게 다정하고, 손자들은 그런 할머니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지요. 손자는 자식과는 다르게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무한히 애정만 줄 수 있는 대상이니까요. 나의 할머니 역시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한테는 인정과 따뜻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함이 있어요. 저는 할머니의 그 특별함이 우리 모두가 할머니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면 고집이 세진다고들 하죠. 실제로 생각의 범위가 좁아지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연세 지긋한 분들을 흔히 볼 수 있잖아요. 그런 어르신들의 언행을 좋아하기는 힘들 거예요. 그런데 제 할머니는 고집을 부리시는 법이 없습니다. 물론 나이 드신 분 특유의 잔소리와 경험에서 오는 조언을 덧붙이시는 경우가 있지만 더 이상의 강요나 고집은 없으세요. 다른 노인분들께 종종 느끼곤 하는 나이를 위시한 권위주의적 행동을 할머니한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저만해도 한참 어린 후배나 동생들과 이야기할 때 나 때는 말이야를 시전 하고, 내 생각과 경험이 옳다고 강하게 말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할머니께서 그런 것도 있구나, 젊은 너희들이 나보다 아는 게 많으니 그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떠올려 보면 그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느끼게 됩니다.      



  아흔이 가까운 나이에 스마트 폰을 쓰는 어르신을 본 적 있으신지요. 저희 할머니입니다. 저는 할머니께 카카오톡 영상통화로 연락을 드려요. 아이들도 카톡으로 증조할머니 얼굴을 자주 뵈니 할머니께서 스마트폰 쓰시는 걸 전혀 어색해하지 않아요. 재미난 영상이나 사진이 있으면 저한테 보내주시기도 합니다. 또 치매 예방을 위해 색칠하기나 퍼즐 맞추기 같은 스마트 폰 게임도 하시고요. 인내심을 가지고 할머니께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드린 이모들의 노력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시는 할머니의 도전 정신이 대단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할머니 친구분들이 다 놀라신다고 해요. 자식들이 사준다고 해도 어렵고 귀찮다고 거부하는 어른들이 더 많으시잖아요. 원래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하고 얼리 아답터와는 거리가 먼 저로서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배우는 데 주저하지 않으시는 할머니를 더 존경하게 됩니다.      



  교육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 그 연세 여성분들이 흔히 그렇듯이, 할머니는 글자를 모르셨어요. 중학생 때 할머니와 함께 은행에 가서 입출금 신청서를 대신 써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할머니는 예순이 가까운 나이에 한글을 배우셨고, 혼자서 은행 일을 보실 수 있게 된 걸 아주 좋아하셨어요. 지금도 아이들이 깔깔대며 책을 읽다 자리를 뜨면 그 책을 몇 장씩 읽어 보십니다. 이게 그렇게 재미있냐 하시면서요. 네가 보던 별자리 책 참 재미있더라 하고 말씀을 건네시고, 윷놀이며 알까기와 화투까지 지루할 때까지 무한 반복해주시는 증조할머니는 제 아이들에게도 인기 만점입니다.     



  늘 지금 같을 것 같지만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게 흐릅니다. 늙음을 반가워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겠지요. 저도 언젠가 할머니 나이의 노인이 될 겁니다. 80대 나이로 혼자 사는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고, 조금 두려운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우리 할머니처럼만 나이들 수 있다면 노년의 시간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든 일에 호기심을 가져 지루하게 하루를 흘려보내지 않으며, 새로움에 용감히 도전함으로써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키면서요. 나는 잘 있으니 걱정 말고 즐거운 시간 보내라는 우리 할머니의 영상통화 마지막 멘트, 우리 가족의 롤모델 할머니를 통해 멋지게 노년을 보내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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