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가난을 받아들이는 법.
뜻하지 않은 가난이 대물림되는 세상이다.
가난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삶이 달라진다.
가난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다짐 없이 가난을 외부적인 요인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성향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난을 나와 내 후손에게 대물림하는 것밖에 없다.
내 삶에서 가난을 끊기 위해서는 내가 가난을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는 사람은 다시 그 구덩이에서 허우적대며, 자신의 삶을 끝내야 한다.
하늘에서 갑자기 동아줄이 내려와 나를 구해주는 이야기는 전래동화에서만 나타나는 이야기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가난의 시간은 언제나 더디고 무겁게 내 삶을 짓누른다.
짓눌림은 세상의 일들이라는 프레임으로 우리의 영역에 대한 피해를 수긍하라 다독인다.
조금의 선의, 조금의 보조금, 조금의 삶에 대한 생활비.
너희는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그냥 우리가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말고 살아.
점점, 나라에서는 우리가 낸 세금으로 생색을 낸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이리도 마음에 비수가 되어 비틀거린다.
편의점 앞에 쌓여만 가는 빈 술병들이 자영업장의 빈익빈, 부익부를 가른다.
국가가 정해놓은 영업시간이라는 운영시간 안에.
자영업자는 어떻게든 살아보려 애를 쓴다.
정해놓은 시간을 미친 듯 살아내며.
짓눌린 정신을 차리려. 하늘을 우러러본다.
잿빛 하늘에 작은 철세 한 마리가 어디로 가는 건지 알지 못하지만.
우아하게 자신의 날개를 펼치며, 상공을 가른다.
혼자다.
상공을 가르는 철세도 나도 혼자다.
<오늘의 묵상>
자신의 방식으로 모든 일을 풀어가려고 할 때 우리는 실패를 경험한다.
틀림에서 오는 것을 인내라는 착각으로 계속해내려고 하지 마라.
현재에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자신이 생각하기에 최선을 다했다면.
포기하는 것도 능력이다.
여기서 인내는 그 목표를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 범위에 갇혀 있지 않은 상태에서 더 넓은 생각과 실천의 범위로 옮겨 갈 때.
여러 가지 방법이 우리의 앞에 놓인다.
하지만 그 방법을 선택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결과가 보장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정해져 있지 않다. 단지, 모든 건 과정일 뿐이다.
결과를 생각하고 하는 일은 언제나 변수에 부딪혀 좌절을 안겨준다.
그냥, 과정만 있을 뿐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단지, 과정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