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선을 넘지 마시오
누군가에게는 멈춘 선이 누군가에게는 출발선이 되기도 한다.
요즘, 나오는 심리에 관한 인간관계 에세이 책들을 보면.
내 판단과 나의 기준선에서 잘못되면 상대방을 손절하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어찌 그 모든 것이 내 판단과 나의 기준으로만 상대방을 평가할 수 있겠는가.
내 안위와 내 평안을 위해서 상대방의 의중 없이 그 사람을 내 삶의 단면으로 도려낸다고 한 들.
과연 그것이 내 인생에서 좋은 결정일까? 과연 내가 그어놓은 선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올바른 선이었는지.
상대방도 그 선을 알고 있었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혼자만의 편협한 생각과 환경에 휩쓸린 순간적인 감정으로 본인만 알고 있는 선들이 난무하는 요즘.
내가 보기에 좋지 않고, 내가 생각하기에 내 가치관과 다르다고 상대방이 옳지 않은 것은 아닌데.
무조건 내 생각과 내가 정해 놓은 선에서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을 평가할 순 없다.
내 생각과 선이 있는 만큼, 상대방도 자신이 정한 선이 있을 것이다.
그 선들이 촘촘하게 엮여 관계라는 그물망을 만든다.
그 선들 중 몇 개의 선만 제거하면 티도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멸되는 선들이 많아지면 애써 만들어 놓은 그물망은 찢어진다.
그리고 그물 안에 있던 힘겹게 버티고 있던 소중한 우리의 시간과 추억들도 빠져나가 후회라는 거대한 강물에 휩쓸려 사라진다.
시대적 사상으로 믿었던 과학적 사실도 시대가 변하면 오류로 밝혀져 정정되는 과학적 사례도 많은데 한낱 생명체에 불과한 인간 개인의 옳고, 그름이 모든 이들의 삶을 재단하는 잣대가 될 수 있을까?
가만 보면, 애초에 인간들의 특이한 무리 생활 내에서 만들어 놓은 문명이라고 불리는 역사 안에서. 선이라는 구분과 구획이라는 틀 안에 자신들의 영역을 나누어 그곳을 독점하려는 욕망으로 얼룩진 인간의 모순이 아닐까?
지구라는 둥근 세상에서 앞으로 자꾸 걸어 나가면 다시 만나게 되어 있는데.
우주라는 광대한 물질 덩어리에서 지구라는 물질을 보고 있으면, 그 속에 있는 인간이라는 원소는 보이지도 않을 텐데. 조금 더 배려하고 이해하며 살아가면 좋을 텐데. 그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오늘도 생각안에서 서로의 선을 정해 놓은 뒤 상대방의 단어와 문장에 촉을 새우고 있다.
어어 조그 더 넘어오면, 위험해! 너 지금 내가 정해놓은 선을 넘으려 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