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유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고난이다. 인간의 영역 중 필연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 죽음이다. 할머니는 몇 주를 자가호흡이 아닌 산소와 코로 연결된 관을 통해 최소한의 신체 활동을 보조하는 영양소들로 연명하셨다.
할머니의 죽음은 고통이었다. 요양병원에서의 폭행과 낙상을 통한 수술 후 급속하게 몸이 허약해지셨다. 4년을 끌어온 재판과 소송은 결국, 두 병원의 혐의 없음으로 일단락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던 것이었을까?
폭행이 과실치상이 되고, 낙상이 당사자의 부주의로 인한 잘못으로 치부되는 법의 굴레. 요양이라는 타이틀을 단 병원에서 과연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자신의 육체를 잘 가늠할 수 있었을까? 수가라는 타이틀로 환자를 폐쇄병동에 넣어두고, 외부인을 철저히 차단했던 병원은 이른 새벽 할머니의 거동에 따른 침상 복귀에서 일어난 상황에 대해서 정말 아무런 잘못이 없었던 것일까?
병원들은 자신들의 편의와 안위를 위해 수가를 조작하고, 무엇이 두려워 간호기록지의 내용을 수정했던가?
무지에서 온 안일한 대응은 결국, 그들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준 것이다. 법의 테두리는 있는 자들의 것이며, 그 테두리를 정하는 것은 있는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다.
사회를 믿었고, 정의를 숭배했으며, 법치국가의 헌법을 믿었다. 하지만 좋은 로펌을 구하지 못하여, 3명의 변호사를 대동한 대형 병원의 논리와 반박에 제대로 된 대응도 하지 못한 가난을 탓해야 한다.
아직도 기억한다.
조정기간 담당판사는 병원 측 변호사와 조정관의 말은 귀담아 들었지만, 변론을 재기한 나의 발언을 함구시켰다. 말을 시작하자마자 자르며, 서면으로 자료를 제출하라고 했다. 4년 동안 난 이렇다 할 변론과 사건의 정황도 말하지 못하고 그렇게 사건은 최종 판결로 넘어갔다. 그리고 나의 대리인의 변호사는 병원의 승소로 끝이 났다는 이야기를 전한 뒤 일련의 과정을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계급과 세상의 잣대가 통용되지 않는 곳으로.
마지막, 나의 손을 움켜잡으며 눈을 뜨지 못한 할머니 었지만 돌아가시기 2시간 전 갑자기 눈을 떠 나와 눈을 마주치며 힘없는 손아귀에 마지막 힘을 다해 내 손을 꼬옥 잡아주셨다.
고난의 크기는 서로가 다르다.
다르다고 모두가 틀린 건 아니다.
내 고통의 크기다 크다고 해서 남이 내 고통을 크게 생각해 주는 것도 아니다.
내 고통의 크기가 작다고 내 고통의 크기를 작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상대적으로 우리는 서로 다른 고통의 시간을 건너가고 있을 뿐이다.
내 고통을 알아봐 주지 않는다고, 슬퍼할 필요도 내 고통의 크기를 알아봐 주었다고 해서 기쁠 필요도 없다. 각자의 시간, 각자의 크기에 따른 고통을 고난이라는 시간적 주기에 담아두고, 그 시간을 인내하는 삶이 현명하다.
누군가는 고난 속에서도 아스팔트 위 작은 틈을 비집고 나와 꽃을 피운 민들레꽃에서 행복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꽃을 보며, 피우기 전 바람에 날린 씨앗의 방황을 기억한다.
민들레꽃이 자신의 봉우리를 피우기 위해 필사의 노력으로 자신을 꽃피웠던 과정을 알고 있기에 행복하기보다는 연민과 감사의 마음이 든다. 이 세상을 비집고 피워줘 고맙다.
너를 통해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해 주어서 고맙다.
쪽지에 적어놓은 미상의 작가의 문장을 되뇌었다. "인생의 소용돌이 가운데에 있는 것보다.", "차라리 모진 풍파의 가장자리에 있는 것이 낫다.", "내가 모르고, 갑자기 소멸되는 것보다.", "모든 일들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내 삶을 더욱 강하게 만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