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유카
꼬박 9시간을 한 공간에 머물며, 일이라고 하지만 결과를 알 수 없고 날 인정해주지 않은 곳에 갇혀 다른 이들의 감시 속에서 모니터의 불이 꺼지지 않게 말도 되지 않는 조합의 기획과 일들을 생성해 낸다. 도와주는 이도 나와 함께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는 공간. 최소한의 노력과 최대한의 인내로 버텨낸다.
일의 방법도 일에 대한 어떠한 자료도 없는 미로에서 나는 길을 찾아 떠난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는 역치가 넘어서는 순간 월급이 들어온다. 육체노동이 없는 사무실에서 내 자리는 통창으로 된 모든 것이 오픈된 공간이다.
마치, 감시라도 하는 것처럼 내 일거수일투족이 모든 사람에게 오픈되어 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업무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으며, 내가 부탁을 청하지 않는 이상 나에게 그 누구도 업무상의 말을 하지 않는다. 가끔씩 속삭이듯 그들의 언어로 그들만의 사적인 대화를 속닥인다. 자신의 업적과 있어보이는 업무에 성과에 대해서는 대단한 일처럼 데시벨을 한 껏 올려 목청에 힘을 실어 자랑하는 듯 자신의 성과와 과정을 떠벌리듯 외친다.
삶에 대한 사소한 의견과 예의상의 말을 이어가기 위한 어떠한 사적인 대화도 나에겐 허용되지 않는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무력감과 배고픔이 밀려온다. 당연히 그들과 밥을 먹거나 간식을 나누는 경우도 없다. 철저히 배척되어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단절된 기류에 숨이 막힌다. 회사에 소속되어 있지만 명함을 내밀기 힘든 영업직이다.
영업직을 맡은 것도 나의 성향과 능력을 고려하여 얻게 된 것이 아니다. 단순히 이 회사 내에 영업 할 사람이 없어 부득이하게 영업사원을 맡게 된 것이다. 일절 활동비와 유류비는 없다.
월급에서 활동비와 기타 영업에 필요한 경비를 모두 사용해야 한다.
전체회의는 침묵과 회사의 매출, 그리고 대표가 직원들에게 바라는 것들만 나열한다. 매번 같은 형식이다.
사회적 기부와 홍보라는 명목하에 쓰이는 답례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간다. 당연한 이치다. 결국 브랜드의 평판은 공짜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들이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사람들은 점점 내가 속해있는 브랜드의 감도를 따지며 등을 돌린다.
악순환이다. 축적된 기회비용은 점점 회사의 장부에 마이너스로 쌓여간다.
현재를 위해 미래의 자본을 잠식하고, 부채는 늘어만 간다. 영업의 성과를 내고자 기획서와 방향성을 제시하면, 회사는 현재 여유 자금이 없어 지원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러면서 영업은 중요하다 말한다. 내가 대표가 아닌 이상 내가 해낼 수 있는 것은 제품을 들고 방문 영업을 하는 것 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은 안다.
회사의 제품이 경쟁력이 없으며, 굳이 이 가격에 우리 회사 제품을 구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쪽지에 적어놓은 미상의 작가의 문장을 되뇌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 세상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