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유카
좋지 않은 일은 언제나 한꺼번에 일어난다.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한 순간. 소리소문 없이 다가와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뒤. 그것을 후회해 봤자 이미 사건은 진행되어 삶에 스며든다.
"들풀에 타도 다하지 않고, 봄바람이 불면 또 자란다."
_야화소부지네, 충풍치유생
요즘 들어 불이 여기저기 많이 난다. 자연의 섭리일 수도. 아니면, 인간의 부주의로 인한 한 낱 불꽃놀이 일수도. 산불의 피해를 불꽃놀이로 표현하는 저급함을 보아 난 평균 이하의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 오후 4:00 라디오 주파수에서 나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좋다. 가곡이 흘러나온다. 처음 소개를 듣지 못했다. 가곡을 끝까지 다 들었다. 그 후 몇 초의 텀이 지나자 그 노래가 이탈리아의 가곡 "소뇨"이며, 엘리냐 가란체의 음성으로 불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날씨. 오후 04:00시 정각을 알리는 신호음과 함께 세차게 내렸다 그친다. 한 소프라노 성악곡이 세차게 내리는 창을 뒤로한 채. 평화로이 울려 퍼진다. 유리창 바로 앞에 있는 매장의 사람들이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를 반복하며, 요란하게 자신들의 행위에 열과 성의를 다한다.
15분 뒤, 갑자기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암실에서 밝은 곳으로 뛰쳐나왔다.
실내의 환한 빛을 받으며, 어두운 외부의 조도에 거침없이 떨어지는 빗방울. 우렁차게도 내린다.
5월의 중간을 넘어선 날씨에도 도통 더워지지 않는 희귀한 날씨 탓에 오래된 입생로랑 재킷을 입고 있다. 새로 살 돈이 없어, 빈티지 업체를 통해 구매한 갈색의 블레이저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조그마한 종이 쪼가리가 엄지와 검지 사이로 들어와 잡혔다. 환경에 크게 도움은 되지 않지만. 손에 잡히는 영수증 혹은 과자 껍데기를 돌돌 말아 종이접기를 하는 버릇이 있다. 그 버릇이 이 재킷의 전 주인에게도 있었는지 미처 몰랐다.
검지와 엄지에 낚인 종이 쪼가리가 두 번이나 고이 접힌 영수증이었다. 평균 이하의 성격상 이런 것을 쓰레기통에 내던지지 못한다. 오래된 먼지처럼 떨어져 나오는 입자를 무시하고, 과감하게 꼬인 영수증을 풀어헤쳤다.
이런 자잘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밖에서는 3번의 번개가 몇 분 간격으로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아직 번개는 내 시야에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풀어헤치지 못하게 베베 꼬여 있는 영수증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외부의 약한 힘과 움직임에도 바사삭 갈라지고, 이내 자신의 조각을 책상 위로 흩뿌렸다.
작게 적힌 글씨들과 <거래명세서>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보니 분명 영수증임에 틀림없다.
다른 게 아닌, 이 영수증의 날짜를 알고 싶었다. 가로와 세로가 정갈하게 면을 마주하고 있는 것을 보니 이 전 주인의 세심하고 어여쁜 여자친구의 솜씨가 분명하다. 모든 면을 다 펼쳤을 때. 안쪽에는 누렇게 색을 바란체 그 어떤 문구와 숫자도 적혀 있지 않았다. 요 근래 가장 허탈하고, 아쉬운 순간이었다.
왼쪽은 테이블 끝에 놔두고, 오른손으론 영수증 파편들을 더 과감하고 공격적으로 쓸어 담아냈다.
'집에 물이 떨어져, 빈속으로 삼켰던 마그네슘 2알의 여파인가?.' 오늘 화장실만 5번을 갔다. 변기에 앉아 모든 순간 내 안에 있는 것을 찰랑이는 물 위로 내려 보냈다. 화장실 청소는 매주 자신의 순번에 맞게 번갈아 가면서 진행한다. 분명 오늘 다른 순번의 사람이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카락 한 움큼이 뭉쳐져 바퀴벌레로 보이는 착시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난 놀라지 않았다. 오늘 그것을 5번째 보고 있으니까. 치울 법도 하지만, 다른 이가 해야 할 성실을 빼앗는 것 같아 난 아무런 행위도 현실에 옮기지 않았다.
난 분명 화장실 청소를 한 사람을 보았다. 그럼 이것은 화장실 청소를 한 것일까? 하지 않은 것일까?
좌변기로 된 공용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나왔다. 남자인 나는 앉아서 소변을 보지 못했다. 바로 밑에 층에 있는 브랜드 관련 직원이 올라왔다. 화장실로 가는 게 확실하다.
'과연 그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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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에 적어놓은 미상의 작가의 문장을 되뇌었다. 네 안에 있는 늑대에게 먹이를 줄 때는 너의 내면의 손이 함께 먹히지 않게 조심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