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by 와타사와

Imagine all the people
상상해 보세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Living life in peace
평화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요

You may say I'm a dreamer
당신이 저를 몽상가라 부를지도 몰라요
But I'm not the only one
하지만 저는 혼자가 아니랍니다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언젠가 당신이 우리와 함께하길 바라요
And the world will be as one
그렇다면 세상은 하나가 될 거예요


Imagine, John Lennon, 1971




거기까지였다. 한때 세상을 뒤흔들며 변화의 물결을 일으켰던 그룹과 리사의 여정은 이제 그 끝자락에 다다랐다. 반대 세력은 이미 그들을 잠재우기 위한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그들은 그룹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그들의 전략과 새로운 시도를 철저히 간파하고 있었다. 반대 세력의 승리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밀하고 체계적으로 설계된 계획과 실행의 산물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승리해 왔고, 그 승리의 공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반복된 역사, 그리고 매번 똑같은 결말이었다. 변화를 시도하는 자들은 좌절하고, 기존의 질서는 다시금 그 자리를 공고히 했다. 그들의 승리는 철저히 계산된 결과였고, 주인공들의 분투는 결국 거대한 기득권의 벽 앞에서 무력하게 부서져 갔다. 세상은 그렇게 또 한 번, 같은 자리에 머물렀다.


그들의 승리는 또한 단순한 힘의 우위 때문만이 아니었다.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면에서 그들은 철저하게 그룹의 반격을 무력화했다. 작은 틈조차 허용하지 않으려는 치밀한 전략이었다. 그들은 그들 공동의 이익을 위해, 마치 하나의 거대한 기계처럼 움직였고, 언론마저 완벽히 장악한 채로 그 어떤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시스템은 견고하고 치밀했다.


조급함도 없었다. 그들은 시간의 흐름이 결국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을 알고 있었다. 대중은 쉽게 변하고, 그 변화의 물결은 늘 그들의 예측 속에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을 설득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다. 그저 현실을 통제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교묘히 돌리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이 모든 과정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치 이미 수백 번 반복된 시나리오처럼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어느새 그들이 설계한 현실 속에 또다시 갇혀버렸고, 기후 변화에 대한 관심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그들의 작전은 완벽했고, 세상은 다시 그들의 뜻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승리를 확인한 순간에도 여전히 조용하고 신중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대중 앞에서 자신들의 승리를 자랑하거나 과시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로 하여금 자책감 없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유도했다. 새로운 이슈들을 던져주며, 기후 변화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은연중에 심어갔다. 대중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쏠렸고, 그러는 사이 그들은 자신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했다.


그들은 대중의 시선을 돌리는 데 익숙했고, 그 일은 너무나도 쉽게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새로운 뉴스와 논란 속에 빠르게 휩쓸려 갔고, 기후 변화에 대한 불안과 분노는 어느새 잊혔다.


새벽이 찾아왔지만, 그 고요함은 무겁고 스산했다. 여명은 희미하게 도시를 덮고, 어둠에 젖은 하늘은 하루가 시작될 때마다 지친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기온은 조금씩 계속 오르고 있었지만, 날씨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사람들 사이에서 더 이상 화제가 되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주목받을 날이 올지 모르지만, 그마저도 금방 잊힐 것이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끔찍한 기록들이 경신되고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 이상함에 놀라지 않았다.


도시는 침묵 속에 갇힌 듯했고, 사람들은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기 위해 몰두하고 있었다. 시끄럽던 경적마저 희미하게 들리는 새벽의 거리에서, 도시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속은 텅 비어 있었다. 그들의 삶은 끝나지 않는 무채색의 연속이었다.


기후 변화 대응 운동은 이미 소리 없이 무너져 버렸고, 그룹은 목소리를 낼 힘도, 의지도 잃어가고 있었다. 언론은 기후 변화 대신 새로운 논란과 정치적 스캔들로 가득 찼고, 사람들의 관심은 금세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룹이 피땀 흘려 쌓아 올린 노력은 이제 기억 속으로 사라졌고, 그들의 이야기는 빠르게 잊혀 갔다.


언젠가 그들의 목소리가 세상을 흔들었던 순간은 과거의 작은 소동일 뿐이었다. 그룹이 꿈꾸었던 변화는 더 이상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조용히 세상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진우는 한때 기후 변화를 완화하는 최선의 금융 상품이라 불렸던 녹색 채권을 떠올렸다. 여전히 많은 기업이 녹색 채권을 발행하며 활발히 홍보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진우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꿈꿨던 선한 금융의 미래는 무너졌고, 그가 세운 이상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버렸다.


진우는 거리의 벤치에 앉아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각자 바쁜 일상에서 자신의 길을 걸어갔고, 진우를 알아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때 세상을 바꾸겠다는 열망으로 가득 찼던 그는 이제 그저 낯선 사람들 사이의 한 명일 뿐이었다. ‘이렇게 다시 2050년까지 살아가야 하는 건가?’ 진우는 자조 섞인 헛웃음을 터뜨렸다. 거대한 도시 속에서 그는 그저 이름 없는 행인의 하나로, 무너진 꿈과 함께 조용히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스트리드는 텅 빈 영화관의 의자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녀의 다큐멘터리는 더 이상 상영되지 않았고, 대중의 관심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어두운 스크린 앞에는 아스트리드의 작품을 기다리는 관객도, 그것을 평가할 비평가도 없었다. 아스트리드는 자신의 다큐멘터리를 다시 틀어보며, 한때 사람들에게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리라 믿었던 희망을 떠올렸다. 스크린 속 리사의 얼굴을 보며 울고, 웃고, 다시 울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이제 너무도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작품은 그저 잊힌 기록, 아무도 찾지 않는 오래된 상처와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작업실로 돌아온 아스트리드는 카메라를 손에 들었지만, 렌즈를 통해 본 세상은 한없이 삭막하고 무의미하게만 보였다. 무엇을 찍어야 할지, 무엇을 기록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예술의 힘을 굳게 믿었던 그녀의 신념은 무너져 내렸고, 아스트리드는 조용히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그것은 이제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희미한 기억의 조각일 뿐이었다. 그녀는 결국 카메라를 내려놓고,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이 공간에서, 아스트리드는 한때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자신의 흔적이 이제 얼마나 부질없게 느껴지는지를 조용히 받아들였다. 더 이상 약은 먹지 않을 생각이다.


레이첼은 손전등을 켜고 마지막으로 연구실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수많은 밤을 지새웠던 이 공간은 이제 먼지 속에 묻힐 것이다. 실험 장비와 데이터는 그대로 방치된 채 녹슬어 갈 것이다. 컴퓨터 모니터는 꺼져 있었다. 모든 시스템은 멈춘 지 오래였다. 레이첼은 조용히 의자에 앉아, 컴퓨터의 전원을 다시 켰다. 화면이 천천히 켜졌다. 그녀가 철저하게 설계했던 미래는 이번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레이첼은 그 사실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레이첼은 전화 부스 같은 작은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심호흡하고 천천히 의자에 앉아 머리를 숙였다. 그 순간, 기계가 작동하며 희미한 빛이 그녀를 감쌌다. 그리고 그녀는 사라졌다.


그 순간 알리아는 조용한 교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한때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아이들은 이제 이곳에 없었다. 교육은 더 이상 허락되지 않았고, 학교들은 그녀의 프로그램을 철회했다. 알리아는 수년간 준비했던 교육 자료들을 하나씩 정리하며, 그것들이 다시는 사용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설령 다시 사용될 날이 온다 해도, 그때의 알리아는 이곳에 없을 것이다.


텅 빈 교실을 천천히 걸으며, 아이들이 앉아 있던 책상과 의자를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아이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은 전달되지 못한 채 공허한 공간에 머물렀고, 그 빈자리는 더 큰 침묵으로 가득 찼다. 알리아는 창문 너머로 뿌옇게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 하늘이 아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지구본을 천천히 돌려보았다. 그 지구본은 이제 그녀가 지키려 했던 세상과는 너무도 다르게 느껴졌다. 알리아의 가르침은 허공 속으로 사라졌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지킬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무력감뿐이었다.


레이첼과 하야토를 제외한 그룹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제 셋뿐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하며, 이 싸움이 끝났음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레이첼은 두 주째 연락이 닿지 않았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레이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셋은 한동안 말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방 안은 숨소리만이 조용히 울렸고, 그들의 침묵은 차가운 현실을 더욱 강조했다.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들의 모든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이제 서로를 위로할 말조차 찾지 못했다.


침묵을 깨고 진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지울 수 없는 슬픔이 묻어 있었다. 오늘 아침에도 재판을 마치고 돌아온 그였다. 그들은 그 말에 누구 하나 대답하지 못한 채, 각자의 패배를 묵묵히 삼켰다. 아스트리드는 진우의 말을 들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에 들린 카메라는 여전히 진우를 향해 있었지만, 아스트리드는 더 이상 무엇을 찍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천천히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알리아는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선 것 같아 고개를 돌렸을 때, 하야토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는 더 이상 이 자리에 있지 않았다. 그가 있었다면 아마도 다시 난민 캠프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곳에는 그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셋은 그렇게 조용히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그들 곁에서 누군가는 떠났고, 누군가는 사라졌으며, 남은 이들은 조용히 패배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의 싸움은 여기서 끝났지만, 그들 사이의 유대만큼은 남아 있었다. 그것이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위로였다. 그들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걸어가는 길은 서로 달랐지만, 같은 과거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았다.


싸움은 끝났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희망을 품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그 희망이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것인지 잘 알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선 여전히 그 희망을 놓지 않으려 했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기후는 여전히 변덕스러웠으며, 사람들은 여전히 무관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레이첼이 함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함께했던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룹은 다시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그들은 패배했지만, 그 싸움의 기억은 여전히 가슴속 깊이 남아 있었다.


그들의 싸움은 끝났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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